조선의 울릉도,독도관리 5 └ 성고선생 칼럼

메이지(明治) 초년에 울릉도와 독도가 어느 나라에 속하는가를 태정관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태정관 이와구라 도모미(岩倉具視)는 내무성의 건의를 받아들여 “다게시마(울릉도) 외 1도(독도)는 본방(本邦)과 관계가 없다”고 했다. 두 섬이 조선령임을 선언한 것이다.

1696년 안용복은 11명의 일행을 데리고 일본에 밀항해 관백에게 쓰시마두주의 불법비리를 고발하는 소장(訴狀)을 올렸다. 그는 3월 18일 울산을 떠나 울릉도에 도착했다. 그리고 5월 15일 독도로 갔다가 18일에 오키도(隱岐島)에 도착했다. 그는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령임을 <조선팔도지도>를 펼쳐 보이면서 밝혔다. 그는 소장에서 조선선박 13척이 울릉도에 건너왔고, 그 중 11명이 탄 1척이 오키도에 왔다고 했다. 오키도에서는 쓰시마번의 통역을 요구했다. 쓰시마번에서는 소장을 취하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돗토리 번주 이케다 쓰나키오(池田綱淸)는 울릉도와 독도가 당신나라에 속한 섬이니, 이후 일본인이 다시 경계를 침범하는 자가 있거나 쓰시마도주가 함부로 침범할 경우 엄벌에 처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을 받은 뒤 안용복은 8월 6일 귀국길에 올라 8월 29일에 양양현(襄陽縣)에 도착했다. 그러나 안용복 등은 강원감사에 의해 체포되어 비변사로 넘겨졌다. 비변사 당상들은 안용복이 멋대로 국경을 넘고 소장을 올렸다 해 처벌하려 했으나, 영중추부사 남구만 등은 1) 안용복이 쓰시마가 아닌 막부와 직통할수 있는 길을 텄고, 2) 쓰시마번이 울릉도를 다게시마라 하고 막부의 명을 빙자해 이 섬을 가로채려한 정황을 알아냈고. 3) 일본이 갑자기 울릉도에서 고기잡이 하는 것을 금지시키겠다는 통지를 해 온 것 등은 안용복의 공이라 해 용서해 주었다. 그 결과 정부는 강경방침으로 바뀌었다. 남구만이 고쳐 쓴 서계에서 울릉도가 조선령이고, 일본 연해민의 출입을 금한다고 했다. 이에 안용복은 사형에서 유배형으로 감형되었다. 안용복의 공로는 그가 피납되었을 때 울릉도와 독도(자산도)가 조선령임을 주장해 이것이 돗토리번에 의해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돗토리번은 막부에 울릉도 · 독도의 영유를 부인하는 보고를 올렸고, 그것을 근거로 막부가 도해금지령을 내린 것이다. 또한 그는 요나고(米子)로 납치되어 갈 때 울릉도-독도를 거쳐 가서 두 섬이 다른 섬이라는 것을 실증한 셈이다. 유형원의 『여지도』(輿地圖)의 2도설이 증명된 셈이다.


덧글

  • 零丁洋 2013/02/24 08:50 # 답글

    이런 자료들이 독도 영유권 주장에 도움이 않되나요? 일본이 어떤 논리를 갖고 있는지 그게 궁금합니다.
  • 블레이드 2013/02/25 09:00 #

    일본은 1905년 러일전쟁때 합병한 게 합법이라는 논리인 것 같던데, 저도 이 분야 전문가는 아니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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