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도 회군의 결과 2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나라를 세울 것이다[木子得國].

- 《태조실록1, 총서

 

우왕과 최영이 회군 사실을 안 것은 회군한 지 이틀이 지난 524일이었다. 요동 정벌군의 후방에서 보급을 담당하던 최유경이 우왕에게 회군 사실을 알렸다. 다급해진 우왕과 최영은 개경으로 후퇴했다. 먼저 개경에 도착해 이들을 상대할 군대를 조직하려는 심사였다. 그러나 최영이 위협도 하고 돈을 미끼로 유인도 해보았지만 병사들은 거의 모이지 않았다. 우왕을 따라 개경까지 간 병사래야 기마병 50명이 전부였다.

회군한 이성계의 병사들이 개경에 도착한 것은 61일이었다. 이성계는 우왕에게 사람을 보내 요동 정벌의 책임을 물어 최영을 처벌하라고 요구했지만 우왕은 응하지 않고 이성계와 조민수를 왕명을 거역한 역적으로 몰아 관직을 박탈했다. 아울러 개경 거리에 방을 붙여 이성계와 조민수를 붙잡거나 목을 베면 큰 상을 내리겠다고 공포했다.

더 이상 협상의 여지는 없었다. 이성계와 조민수는 병사들을 나누어 궁궐을 공격해 최영을 생포했다. 이성계는 최영을 곧바로 죽이지 않고 귀양 보냈고 우왕은 허수아비로 전락시켰다. 이제 고려 조정의 실권은 이성계와 조민수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의 명분을 살려 친명 정책을 추진했다. 우선 원나라 연호를 버리고 명나라 홍무(洪武) 연호를 사용했다. 그 밖에도 원나라 의복과 변발을 금지하고 대신 명나라 의관 제도를 채택하는 등 다방면에 걸쳐 친명 정책을 시행했다.

최영과 함께 요동 정벌을 추진했던 우왕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우왕의 말로는 즉위만큼이나 극적이었다. 이성계와 조민수에 의해 허수아비로 전락한 우왕은 역전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우왕은 일거에 이성계와 조민수를 죽여 없앤다면 왕권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내시 80여 명을 무장시켜 이성계와 조민수의 집으로 쳐들어갔다. 그러나 그때 이성계와 조민수는 자리에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집 앞에 군사들이 보초를 서고 있어서 허탕을 치고 말았다. 이 일이 있은 직후 이성계와 조민수는 아예 우왕을 폐위시켜 강화도로 추방시켜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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