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나간 진평왕? └ 잡글

드라마에서 등장인물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짓을 하는 것 자체는 흔한 일이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좀 심한 것 같다. 어차피 허구인 드라마 자체를 가지고 왈가왈부 하는 것보다, 실제 인물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면 얼마나 황당한 상황이 벌어질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편이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역사적으로 적지 않은 비중을 가진 인물이라면 드라마 때문에 해괴한 이미지가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 버릴 수 있다. 단순히 천년 전에 죽은 사람에 대한 평판이 문제가 아니라, 역사 자체에 대해서도 왜곡된 인식을 가질 수 있다.

50년 넘게 집권했던 진평왕 같은 인물에 대한 인식은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될 수 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는 김춘추나 선덕여왕을 띄울 필요에 따라 그렇기는 하겠지만, 진평왕을 무능하고 무기력한 인물로 몰아간다. 그게 좀 심해지다 보니, 진평왕이 해괴한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그 극단적인 경우가 바로 지난 1230일 방영분의 한 장면이다.

여기서 진평왕은 승만과 가마를 타고 가면서 독백 비슷하게 내뱉는다. ‘공주가 반란을 일으키다니 믿을 수 없다.’ 무심하게 지나가면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이건 드라마에서 설정된 진평왕의 처지와 맞춰보면 상당히 황당한 한마디가 된다. 진평왕은 승만에 의해 감금되었다가 퇴위를 강요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 승만에 의해 야기되었다는 점 진평왕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런 승만에 맞서는 딸 덕만의 저항이 반란으로 보였을까?

사실 이 드라마에서는 왕이나 왕족의 위상도 좀 우습게 만든다. 왕정체제에서 왕을 감금하고 학대하는 행위는 보통 역적질이 아니다. 물론 찬탈을 하려는 입장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겠지만, 이 드라마에서의 문제는 승만 측에 가담하지 않은 신하들까지 이런 상황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김춘추가 덕만과 아무 논의도 없이 비형랑을 만나 오해를 산다는 설정도 나올 수 있다. 실제로 존중받는 지도자라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중요한 문제를 처리할 때 미리 보고하고, 조율해서 승인을 받는 게 정상이다. 대립하고 있는 상대쪽과 접촉할 때에는 특히 주의해야 할 문제다. 그런데 김춘추가 그러지 않았다면, 덕만을 우습게 봤다는 뜻이 된다. 이걸 굳이 비담의 모략 때문이라고 모는 게 무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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