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드라마 대왕의 꿈에서 짚어볼 만한 장면이 나온 듯. 이건 제작진의 마인드를 보여줄 수 있는 문제일 것 같다. 우선 간단한 문제부터. 김춘추와 문희가 혼인하는 장면에서 덕만공주의 대사에 “금관가야 왕실과의 혼인” 운운하는 말이 나온다. 제작진은 김유신계가 금관가야 왕실 자손이니 덕만공주의 덕담에 나오는 게 이상할 것 없을 거라고 별 생각 없이 이런 대사를 집어 넣은 모양이다.
하지만 당시 상황에서 생각해보자. 왕정체제 국가에서 ‘왕실’이라는 게 두 셋 있어도 되는 것인지. 같은 왕실 안에서도 국왕을 제외하면 모두 신하로 취급할 만큼 ‘왕’과 관련된 문제는 엄격하게 다루는 게 당시 상황이다. 그러니 옛날에야 금관가야 왕실이었을 지 몰라도, 일단 신라에 흡수된 이후에는 철저하게 신라 왕실의 신하를 자처하고 살아야 하는 게 당시 관례다.
이런 시대에 신라 왕족 이외의 사람에게 ‘왕실 집안’ 운운하는 건 큰일 날 짓이다. 이런 말을 덕만공주가 아무 생각없이 내뱉었다는 설정. 사실 제작진이 현대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이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 셈이다.
그리고 사소한 것 같지만, 재미 있는 점 또 하나. 문희가 혼인식에서 “정절을 지키며”운운하는 대사가 나온다. 이건 이전에 유부남 김춘추가 문희와 불륜을 저질러 임신시켰다는 설정과도 연관될 문제다.
이건 김춘추에게 문희 이전에 부인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시비를 하자는 게 아니다. 지난 줄거리에서 승만이 김춘추가 문희를 임신시킨 사실을 빌미로 김춘추를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몄고, 그래서 위기를 맞는 것으로 설정했다. 이게 현대의 시청자들에게는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지금 같으면 유부남이 남의 집 처녀 임신시켰으면 사회에서 매장될 일이니까.
그런데 당시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원래 신라에서는 극단적인 근친혼이 이루어졌던 데다가, 성관념도 지금과 달랐다. 왕은 물론 귀족도 여자 여럿 거느리는 건 물론이고, 난잡한 관계가 맺었졌다는데... 그런 상황을 감안하면 ‘정절 지키겠다’는 문희가 좀 별난 여자처럼 되어 버린다. 또 성관계 가지고 임신시켰다고 김춘추가 목을 걸어야 할 정도로 정치적 위기에 몰렸다는 설정이 설득력을 가질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 승만 왕후가 이런 걸 이용해서 김춘추를 제거하려 했다는 것도 좀 이상하게 된다.
관련된 기록을 봐도 김유신이 누이동생 태워죽인다고 쇼를 하자, 선덕여왕이 김춘추에게 가서 해결하라고만 하지 스캔들 냈으니 정치적으로 책임지라는 식으로 추궁하는 내용 없다. 또 문희 이전 김춘추의 부인과 문희를 들일 때의 갈등에 관련해서도 구체적인 기록이 없다. 문희를 들일 때 전부인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게 없었으니 그럴 것이다. 김춘추의 체면을 위해서 지워버렸을 상황은 아닐 테니. 드라마에서도 김춘추의 전처가 애 낳다가 깔끔하게 죽어주는 걸로 처리되었다. 그러니 공연히 김춘추와 문희관계를 불륜으로 설정해서 갈등 만든 스토리가 좀 허무하게 결말을 맺은 것 같기도 하고....
이런 스토리가 나오는 이유는 조선시대를 거치며 성리학자들이 심어놓은 성관념이 지금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적으로 엄격하기로 이름난 지금의 대한민국 성 관념 기준으로 스토리를 만들다보니 당시 사회에서는 별 문제가 안될 일을 문제로 만들어 몰고 가게 되는 것 같다.
- 2012/10/22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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