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위기 극복 1 └ 역사일반

신라는 수를 이어서 중원의 통일왕조로 등장한 당과 621년부터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거의 매년 외교사절을 보냈다. 고구려와 백제의 침입으로 곤경에 처한 신라는 당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하려 했다. 625년 당에 사신을 파견해 고구려 때문에 조공할 통로가 막히게 되었다고 호소하며 도움을 청한 것이다. 이에 당 고조는 우선 626년에 사신 주자사(朱子奢)를 신라와 고구려에 보내 양국이 화해하라는 외교적 중재에 나섰다. 그 결과, 신라에 대한 고구려의 공격이 일시적으로 중지되었다.

한숨 돌린 신라는 628년, 가잠성을 포위한 백제군을 격파했다. 629년에는 대장군 김용춘과 김서현(金舒玄)·김유신(金庾信) 부자로 하여금 고구려의 낭비성(娘臂城)을 공격하게 해 항복을 받았다. 그러나 진평왕은 이와 같은 성과를 거둔지 얼마 되지 않은 632년, 즉위한 지 54년 만에 죽었다.

진평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왕이 선덕여왕(善德女王)이다. 선덕여왕은 즉위하던 해에 나름대로 의욕적인 정책을 폈다. 을제(乙祭)에게 국정을 맡기며, 전국에 관원을 파견해 백성 구제에 힘썼다. 633년에는 주(州)·군(郡)의 조세를 1년간 면제해 주는 등 일련의 시책으로 민심을 수습했다. 즉위 이후 거의 매년 당에 조공 사신을 파견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고구려와 백제의 압박에 대한 대비책의 일환으로 나타난 현상이었다.

그러나 선덕여왕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642년부터 고구려와 백제의 침공이 거세졌다. 그 해에 신라는 백제 의자왕의 침공을 받아 서쪽 변경에 있는 40여 성을 빼앗겼으며, 신라의 한강 방면 거점인 당항성(黨項城)도 고구려·백제의 침공을 받았다. 또한 백제 장군 윤충(允忠)의 침공으로 낙동강 방면의 거점인 대야성(大耶城)을 빼앗겼다.

국가적 위기에 직면한 선덕여왕 측에서 활약한 인물이 김유신(金庾信)이다. 그는 압량주(押梁州) 군주(軍主)로 임명되어 백제의 공격을 방어하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덧글

  • 솔까역사 2012/10/20 09:21 # 답글

    백제도 무왕과 의자왕 모두 당나라에 착실히 조공을 하고 책봉을 받으며 우호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641년 의자왕이 왕위에 오르면서 백제는 신라에 대한 공세를 강화했고 642년 연개소문이 권력을 장악한 고려는 당나라와의 관계가 틀어집니다.
    그리고 앙숙이던 고려와 백제는 643년 화친을 맺고 신라를 고립시킵니다.
    선덕여왕이 무능해서 신라가 위기에 빠졌다는 사람이 많은데 선덕여왕은 632년에 왕이 되었고 신라가 위기에 빠진 것은 642년 이후입니다.
    신라는 고려, 왜에 차례로 문을 두드렸으나 모두 실패하고 결국 당나라에 의존하게 됩니다.
    백제는 653년 이후로는 당나라에 대한 조공을 끊었고 결국 660년 신라의 협력을 얻은 당나라의 침략을 받아 망합니다.
    668년에는 고려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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