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당군이 우리를 위해 적을 멸했는데 도리어 싸움을 한다면 하늘이 우리를 돕겠는가?” 하니, 유신이 “개가 그 주인을 두려워하지만, 주인이 그 다리를 밟으면 무는 법입니다. 어찌 어려운 경우를 당해 스스로 구원하지 않겠습니까. 대왕께서는 허락하소서.” 했다. 당인들이 우리 편의 대비가 있는 것을 정탐해 알고 백제왕과 신하 93명, 군사 2만 명을 노획해 9월 3일 사비에서 배를 띄워 돌아가고, 낭장 유인원(劉仁願) 등을 머물게 해 진영을 설치하고 수비하게 했다. 소정방이 돌아가 포로를 바치니, 천자(天子)가 위로하며 말하기를 “어찌해 이내 신라를 치지 않았는가?” 했다. 소정방이 “신라는 임금이 어질고 백성을 사랑하며, 그 신하는 충성으로 나라를 섬기고 아랫사람들이 윗사람 섬기기를 부형(父兄)과 같이 하니, 비록 나라는 작지만 도모할 수 없습니다.” 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42, <열전> 권 2, 김유신
비록 당나라의 도움을 받았으나 그들 앞에 무릎을 꿇지 않으려 했던 김유신과 신라의 자존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 각 나라의 부흥군을 측면에서 지원하며 당나라를 몰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신라의 이러한 저항이 없었다면 백제와 고구려의 옛 영토를 지켜내는 일도 힘들었을 것이다. 결국 만주 지역의 영토는 지켜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민족의 개념이 싹트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것이 바로 신라의 삼국통일이 우리 역사에 던져주는 의미이며, 김유신이 맡았던 역할이었다.
- 2012/10/13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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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676년 당시 신라가 확보한 영역은 임진강 이남으로 보여집니다.
이 지역은 원래 신라의 영역이었죠.
'한국통일'이라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http://kallery.net/index.php?g_clss=forum&g_prcss=thrd&g_brd=20&g_thrd=1750
한민족의 영역은 신라말에 대동강유역까지 진출하고 왕고때 압록강 그리고 이조때 두만강까지 영역이 커졌습니다.
만주지역의 영토는 지켜내지 못한 것이 아니라 차지했던 적이 없습니다.
너가 미군철수 카테고리 날려둔거 모를줄 아니? 수꼴루스에서 그러다가 한방에 훅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