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세자의 귀국과 죽음 2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심양에 도착한 소현세자는 심양관소, 즉 심관(瀋館)에 거처했다. 심관은 양국 간의 각종 연락 사무나 세폐와 공물의 조정, 포로를 중심으로 한 민간인 문제 등을 처리하는 대사관 같은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본국에서의 단조롭기만 했던 세자의 역할과 달리 그는 요즘의 대사와 같은 임무를 수행했다.

소현세자는 조선과 청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 그 나라 고관들과 친분을 맺었다. 또 뇌물 외교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고자 영리에도 관심을 가졌다. 관소의 문이 마치 시장 같았다고 하는 표현이 이 사실을 단적으로 드러내 준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문제가 되었다. 당시 심관의 일상적인 경비나 교제에 필요한 물자들은 본국에서 부담하고 있었는데, 조선에는 소현세자와 강빈(姜嬪)의 심양 생활이 사치와 낭비 일색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그때 풍문으로 심관에서 청을 부추겨 조선 왕을 세자로 교체하고 인조를 심양으로 들어오게 한다는 공작설이 전해졌다. 또 심기원 역모 사건에서 세자 추대설이 등장하자 인조는 더욱 불안을 느꼈다. 인조는 세자에 대한 청의 대우가 후해진 것이나 지나친 영리 행위가 바로 왕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자금 때문이었다고 단정지었다. 그는 심복 내시들을 심관에 파견해 그곳의 동태를 감시하게 했다.

인조에게는 8년여 동안의 인질 생활 끝에 귀국한 소현세자가 청나라가 보내 준 반가운 선물이 아니었다. 인조는 혹시 청국에서 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라든가 심양으로 들어오라는 강요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세자에게 더욱 냉담했다. 또 소현세자가 귀국 시에 가져온 청나라의 물건들은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귀국한 지 두 달 만인 4월 23일 소현세자는 병을 얻었다. 주치의였던 박군은 학질이라고 진맥했고, 이에 의원 이형익은 연이어 침을 놓았는데 26일 소현세자가 갑자기 죽고 말았다. 3개월 전에 의관으로 특별히 채용된 이형익은 바로 소현세자 내외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인조의 애첩 조소용의 친정에 출입하던 자였다.

돌연한 세자의 죽음은 조정에 큰 충격을 주었고 의관 이형익에 대한 비난은 끊일 줄을 몰랐다. 그러나 인조는 이를 처벌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사인에 대해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또한 박대에 가까운 소략한 상례에 대해 삼사 등에서는 간쟁해 보기도 했으나 왕은 개의치 않았다.

물론 소현세자가 독살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가정에 불과하다. 그러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정황을 살펴볼 때, 소현세자가 비록 살아 있었다 하더라도 인조의 뒤를 잇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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