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추와 대의로 뭉치다 3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이처럼 김유신은 왕의 신임과 백성들의 존경까지 한몸에 받고 있었다. 전쟁이 그를 더욱 강한 지도자로 만들었던 것이다.

647(선덕여왕 16)에 성골 출신의 상대등 비담(毗曇)이 염종(廉宗)과 함께 난을 일으켰다. 김유신은 관군을 이끌고 반란군과 맞서 싸웠다. 처음에는 다소 불리하게 상황이 전개되었으나 곧바로 김유신의 기지로 전세가 역전되었다. 결국 김유신은 반란군을 제압하고 비담과 염종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이 일로 김유신은 군부 최고의 지위인 대장군에 오르게 되었다. 그해 선덕여왕이 후사 없이 죽자 신라의 왕족 중 유일하게 남은 성골인 진덕여왕이 그 뒤를 이어받았다. 그러나 이미 신라의 실제적인 권력은 이찬(신라의 17등급 중 두 번째에 해당되는 지위) 김춘추와 대장군 김유신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648(진덕여왕 2), 김유신은 백제에게 뺏긴 대야성(大耶性)을 되찾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나갔다. 지난 번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김춘추의 딸과 사위의 원수를 갚고자 함이었다.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은 백제 장군 8명을 생포하고 1,000명에 이르는 백제군을 섬멸하는 등 큰 승리를 거두었다. 김유신은 백제 장군 8명을 적진에 묻혀 있는 김품석과 고타소의 유골과 맞교환해 김춘추의 한을 풀어 주었다. 또한 승세를 몰아 백제의 악성(嶽城) 12성을 함락시키고, 그 공으로 이찬과 상주행군대총관(上州行軍大摠管)의 지위를 얻었다. 이어 진례(陳澧) 9성을 공격해 승리를 거뒀다. 이듬해에는 신라의 석토성(石吐城) 7성을 침략한 백제군을 물리쳤다.

한편 654(진덕여왕 8)에 진덕여왕마저 후사 없이 죽자 김춘추가 왕위를 이었다. 신라 역사상 첫 번째 진골 출신 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처음엔 여러 신하들이 상대등인 알천(閼川)에게 섭정을 요청했다. 그러나 알천은 이를 거절하고 이찬인 김춘추를 추천했다. ‘덕망이 두터워 실로 세상을 다스릴 영걸이라는 것이 추천의 이유였다. 김춘추 역시 처음엔 사양을 하다가 마침내 수락했다. 이처럼 알천이 왕위를 김춘추에게 양보한 데에는 김유신의 적극적인 지지가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덧글

  • 솔까역사 2012/09/29 10:41 # 답글

    잘 읽었습니다.
    선덕여왕은 묘하게 현재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와 연결되는 점이 있습니다.
  • 零丁洋 2012/09/29 18:35 # 답글

    삼국 통일과정에서 신라의 역량과 신라에 병합된 백제와 신라 주민에 대한 태도에 관련한 지료가 없나요? 만약 신라가 강력한 힘을 소유했다면 지방 호족에 의한 고려의 탄생이 가능할까요?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