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60일이면 돌아올 것이라던 김춘추에게서 소식이 없자 김유신은 정예부대를 조직해 고구려를 향해 출병할 태세를 갖췄다. 이러한 소식은 신라에서 활동 중인 고구려 첩자들에 의해 곧바로 고구려 조정에 전해졌다. 김유신의 부대와 상대해 전쟁을 치르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고구려는 김춘추를 풀어 주었다. 어차피 김춘추를 붙잡아두고 있어야 고구려에 이득이 될 일도 없었다. 그러나 이 일은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을 부추겼고, 결과적으로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에 이르는 실마리를 제공하게 되었다.
김춘추와의 결속으로 힘을 얻은 김유신은 압량주 군주를 거쳐, 644년(선덕여왕 13) 상장군이 되었다. 김유신은 계속되는 백제와의 전투에서 연이어 승리를 거두면서 전쟁 영웅으로 거듭났다. 다음과 같은 일화는 김유신의 그러한 면모를 부각시키고 있다.
3월에 돌아와 왕궁에 복명(復命)하고 집에 돌아가지도 않았는데, 백제 군병이 국경에 출둔(出屯)해 크게 군사를 들어 우리를 침범하려 한다는 급보(急報)가 또 들어왔다. 왕이 다시 유신에게 이르되, "공은 수고롭다고 생각지 말고 빨리 가서 적군이 이르기 전에 대비하라" 하므로, 유신은 또 집에 들어가지 않고 군사를 조련하고 병기(兵器)를 수선한 후 서쪽을 향해 떠났다. 이 때 그 집의 사람들이 모두 문 밖에 나와서 오기를 기다렸는데, 유신은 문 앞을 지나면서도 돌아다보지 않고 50보(步)쯤 가다가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의 집에서 물을 가져오게 해 마시며 "우리 집 물이 아직도 예전 맛 그대로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군사들도 모두 말하기를 "대장군이 이렇게 하는데, 우리들이 어찌 골육(骨肉 : 가족)을 떠나는 것을 한스럽게 여기랴" 했다. 국경에 당도하자 백제 사람들은 우리 쪽의 병력 포진을 보고 감히 다가오지 못하고 물러갔다. 왕이 듣고 매우 기뻐하며 벼슬과 상을 주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41, <열전> 권 1, 김유신
- 2012/09/23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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