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삼국통일에 김유신과 더불어 큰 공을 세운 사람이 바로 태종무열왕 김춘추(金春秋)이다. 김춘추는 진지왕의 손자이자 선덕여왕의 조카다. 그러나 진지왕이 폐위되었기 때문에 왕족이면서도 왕위 계승권이 없는 진골(眞骨)이었다. 그런 그가 성골(聖骨)이 아닌 왕족으로는 최초로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배경에는 김유신이라는 든든한 실력자가 버티고 있었다.
김유신이 자신의 여동생을 김춘추에게 시집 보낸 이야기는 유명하다. 어느 날 김유신은 김춘추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여 함께 공을 차고 놀다가 일부러 김춘추의 옷고름을 밟아 뜯어지게 했다. 그리고는 첫째 여동생인 보희에게 뜯어진 옷고름 꿰매 주라고 시켰다. 그런데 보희가 부끄러워하며 나서지 않자 둘째 여동생인 문희가 김춘추의 옷을 꿰매었다. 이 일을 계기로 김춘추와 정을 통하게 된 문희는 그의 둘째부인이 되었으며, 훗날 정실부인이 되었다. 이처럼 혼맥(婚脈)으로 이어진 김유신과 김춘추는 서로 지켜 주는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이들은 각자의 출신 성분의 한계를 극복하고 의기투합해 삼국통일이라는 대업의 발판을 마련했다.
642년(선덕여왕 11), 백제는 군사를 일으켜 신라의 여러 성을 공격했다. 이때 신라의 대야성이 함락되면서 성주인 김품석(金品釋)이 전사하고, 그의 부인인 고타소(古陀炤)도 함께 죽었다. 그런데 김품석의 부인 고타소는 김춘추가 첫째부인 보량(寶良)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었다. 김춘추는 원통해하며 딸과 사위의 원수를 갚고자 했다. 그러나 신라의 전력만으로는 백제를 공략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에 김춘추는 스스로 고구려에 원병을 청하러 가겠다고 나섰다.
고구려로 떠나기 전 김춘추는 김유신을 찾아갔다. 그리고 자신이 만약 고구려에서 불행한 일을 당하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 김유신은 김춘추가 무사히 돌아오지 못한다면 반드시 군사를 일으켜 백제와 고구려를 쳐서 원수를 갚겠다고 굳게 약속했다. 고구려에 도착한 김춘추는 고구려왕에게 백제를 칠 수 있도록 군사를 내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미 백제와 동맹을 약속한 고구려가 그 청을 들어 줄 리 없었다. 오히려 원래 고구려의 땅이었던 마목현과 죽령을 돌려주면 군사를 내 줄 것이라고 했다. 김춘추가 이를 거절하자 고구려왕은 그를 가두었다.
- 2012/09/22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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