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金庾信)은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을 통일하는 데 가장 큰 업적을 남긴 명장이다. 삼국의 역사를 이끈 인물들을 소개한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에서도 김부식은 김유신을 가장 큰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
한민족이라는 개념이 정립되기 전에 한반도에 자리 잡은 고대 국가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은 서로의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싸웠다. 그런데 그러한 관계에 종지부를 찍고 삼국통일을 이룩한 나라가 바로 신라다. 그러니 신라의 영웅인 김유신이 집중조명 받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특히 당대에 최고의 권력을 누렸던 왕과 여러 귀족들, 정신적 지주라 할 수 있는 불교 지도자들을 제치고 무장인 김유신이 최고의 위인으로 소개된 것은 그만큼 그가 가진 영향력이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유신은 백제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당나라와 연합해 고구려의 멸망을 촉진시켰다. 그는 백성들의 신망을 받았으며, 조정의 대신들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김유신의 조상은 신라에 의해 532년(법흥왕 19)에 멸망한 금관가야의 왕족이었다. 신라 화랑도 풍월주의 역사를 기록한 《화랑세기(花郞世記)》에는 김유신 가계에 대한 설명이 비교적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기록에 의하면, 김유신의 아버지는 각간(角干, 신라의 최고위급 관직) 김서현(金舒玄), 할아버지는 각간 김무력(金武力), 증조부는 구충대왕(仇衝大王), 고조부는 겸지대왕(鉗知大王)이다. 그런데 김유신 가계는 이미 증조부인 겸지대왕 때부터 신라 귀족과 혼인으로 맺어져 있었다. 김유신이 가야 출신이기는 하지만 신라인의 피가 흐리고 있었던 것이다.
김유신의 어머니 역시 신라의 왕족인 만명(萬明)부인이다. 만명부인은 진평왕의 모후인 만호태후가 진흥왕의 동생인 숙흘종(肅訖宗)과 사통(私通)해 낳은 딸이다. 김서현과 만명은 한 눈에 반해 몰래 사귀었는데, 숙흘종과 만호태후가 두 사람의 교제를 반대하자 함께 도망가 살다가 유신을 낳았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김유신의 탄생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 2012/09/15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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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676년 당나라를 물리친 직후의 신라영역은 임진강 정도에 그쳤다고 보여집니다.
따라서 영역만 놓고 볼 때는 백제병합에 불과합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진한/마한/변한 그리고 신라/백제/임나를 통틀어 한국이라고 불렀습니다.
따라서 660년부터 시작해서 676년까지 진행된 한반도의 지배구조 재편은 '한국통일'이라고 불러야 옳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후 신라가 대동강까지 영역을 확장한 것은 왕고가 압록강까지 영역을 확장한 것과 이조가 두만강까지 영역을 확장한 것과 더불어 북방으로의 '영토확장과정'의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화랑세기는 위서가 아닌가요?
'한국'이라고 표현된 사료가 없는데 한국통일은 무신. 차라리 삼한일통 그대로 가져다 쓰는게 낫지.
그리고 영역만으로 백제병합전쟁이라는건 에바지.
그럼 이후에 나타나는 삼한일통의식을 어찌 설명할건지?
의봉4년개토명기와편, 9주, 9서당 등 문무,신문왕이 빙다리 핫바지가 아닌 이상 이런 짓 할 필요가 없제.
새삼스럽게 참신하다듯이 김영하 선생 의견만 소개할게 아니라 노태돈 선생 의견도 좀 보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