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함대의 2차 원정과 강화도 침략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프랑스 함대가 조용히 물러가자 백성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대원군은 조만간 재침하리라 예상했다. 과연 프랑스 함대는 다시 조선에 출현했다. 이번에는 정찰이 아니라 공격이었다. 9월 5일(양력 10월 13일) 물치도 앞바다에는 일곱 척의 프랑스 군함이 집결했다. 일본의 요코하마[橫濱]에 주둔하고 있던 군대까지 싣고 와 병력은 약 600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한강의 수로가 좋지 않다고 판단한 그들은 강화부를 점령해 한강 하류를 봉쇄하는 작전을 폈다. 한양으로 이어지는 뱃길이 막히면 세곡의 운반이 불가능해지고, 서울의 식량 사정이 악화되어 조선 정부가 맥없이 굴복하리라 판단한 것이다.

다음 날 프랑스 군은 강화도 갑곶진에 이르러 그곳을 점령했다. 강화유수가 퇴거를 요구하자 “무슨 이유로 서양인 아홉 명을 살해했느냐? 이제 너희들도 죽음을 당할 것”이라 했다. 이어 프랑스 군은 한강구를 봉쇄했다. 그다음 날 아침이 되자 프랑스 군은 강화부를 공격해 왔다. 강화부가 간단히 점령되었다. 다음 날 통진부도 습격해 약탈과 방화를 했다.

프랑스 군이 강화부를 점령하자 대원군은 대경실색했다. 서울의 방어책을 강구하면서 기포연해순무사중군 이용희에게 2천여 명의 군사를 주어 출정하게 했다. 그러나 이들이 통진부를 정찰했을 때는 프랑스 군이 이미 문수산성에서 철수한 뒤였다. 이용희는 강화부를 점령하고 있는 프랑스 군에게 격문을 보내 속히 물러가라 했다. 그러자 프랑스의 응답은 “선교사를 살해한 주모자를 엄히 징계하고, 속히 전권대신을 파견해 프랑스와 조약을 체결토록 하라.”였다. 결국 요점은 조약을 체결하는 데 있었다.

그동안 프랑스 군은 연안을 정찰하거나 포격하면서 유유히 소일했다. 문수산성을 정찰하고, 경기수영을 포격하는가 하면, 정족산성에 정찰대를 파견해 전등사를 약탈했다. 대원군은 강화수비군의 군량을 늘리고 장병을 증모했다. 다른 한편 오랑캐를 몰아내고 나라를 보존하자는 글을 의정부에 보내 군민의 적개심을 고무했다. 이용희는 천총 양헌수로 하여금 지방에서 모집한 호랑이 사냥꾼 등 약 500명의 병력을 손돌목을 건너 정족산성 내에 잠복시켜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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