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인양요-프랑스 함대의 1차 원정과 한강 정찰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1866년 8월 10일(양력 9월 18일) 로즈 제독은 기함(旗艦) 프리모오게(Primauget) 등 세 척의 군함을 거느리고 산동의 지부항을 출발했다. 리델 신부와 조선인 신자 세 명도 통역 겸 수로 안내인으로 동승했다. 이들이 경기도의 작약도 앞바다에 도달한 것은 15일이다. 이중 암초에 걸려 손상을 입은 프리모오게 함을 제외한 나머지 두 척이 강화도와 육지 사이의 염하(鹽河)를 거슬러 올라가 동쪽으로 돌아 마침내 한강에 진입했다. 그리고 16일에는 양천의 염창항에, 18일에는 양화진을 거쳐 서강에 도착했다. 거기서 서울을 관찰한 프랑스 군함은 다음 날 강을 내려가 기함과 합류했고, 로즈 제독은 군함을 거느리고 지부로 돌아갔다. 아무런 충돌이 없었으니 순전히 정찰을 위한 1차 원정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조선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애꿎은 강화부 중군 이일제가 파면당하고, 유수 이인섭이 죄를 추궁당했다. 프랑스 군함이 한강을 거슬러 오자 어영중군 이용희가 기마대와 각 부대의 군인들을 동원해 한강변을 경계했다. 그러나 시꺼먼 연기를 내뿜고 굉음을 내며 다가오는 괴상한 배[異樣船]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다행히도 프랑스 함대는 곧 물러갔다.

프랑스 함대가 다녀가자 민심은 흉흉해지고 관리들은 동요했다. 조정에서는 연안 경비를 강화하랴, 각 읍에 성을 쌓고 배를 수리하랴 부산했다. 많은 유학자들이 서양 세력을 배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척사(斥邪)를 주장하는 상소가 쇄도했다. 그중 기정진(奇正鎭)의 상소가 으뜸이었다. “서양과 통교하게 되면 2~3년 안에 백성은 서양화되고 사람은 짐승의 지위로 전락할 것이니 단연코 배격해야 된다. 방법은 결인심(結人心), 즉 인심을 하나로 묶는 것에 있다.”고 했다. 로즈가 들었으면 가가대소할 소리였지만, 그때는 백성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덧글

  • 2012/08/11 06:15 # 삭제 답글

    축구가 막 끝난 이 새벽에 뜬금글을 올리는 저 신념
  • 블레이드 2012/08/12 08:27 #

    별 해괴한 걸 트집 잡네. 축구하고 이게 무슨 상관이라고. 하긴 세상에는 별 놈 다 있게 마련이니...
  • 2012/08/15 18:55 # 삭제

    블레이드 좋아하진 않는다만 이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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