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릉씨(西陵氏)의 딸이 들에 가서 처음 누에를 보니 그 모습이 벌거벗은 듯해 ‘라조(祖)’라고 일렀으니 그대가 물은 글자의 음은 ‘라조’의 ‘라()’ 자와 음이 같을 것일세.”
정약용은 이가환이 그 글자를 알 뿐만 아니라 그 글자가 나오는 문장을 하나도 남김없이 외워버리자 이가환이야말로 모르는 것이 없는 위대한 학자라고 감탄했다.
또한 이가환은 고금 역대의 시에 대한 감식에도 정통해 생질 허질(許瓆)이 온종일 당송원명의 시를 시험해도 한번 들으면 모두 알아맞춰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우리나라 시는 더욱 그에게 숨길 수 없었으니 허질이 우리나라와 중국의 역대 시집을 가지고 종일 뽑아 물어보아도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허질은 재주가 뛰어난 선비였는데 어느 날 시 한 수를 중국의 시체와 매우 흡사하게 자작해 이가환에게 가져가 물으니 그가 허질을 똑바로 보고는 한참 있다가 장난기 있는 어조로 “이것은 개새끼의 시이다.”라고 했다. 허질이 이 말을 듣고 “귀신이구나! 어찌 내가 지은 것인 줄 아는가?”라며 놀라서 말했다. 그 후 이 이야기를 들은 자는 모두 웃었다고 한다.
이처럼 한 시대가 낳은 훌륭한 인재였던 이가환은 성호 이익의 종손자로 이용휴의 아들이며 이승훈의 외숙이었다. 그는 정조가 정학사(貞學士)라 부를 만큼 대학자였고, 특히 천문학과 수학에 정통해 “내가 죽으면 이 나라 수학의 맥이 끊어지겠다.”고 할 정도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런 그가 신유박해로 쓰러졌으니 남인은 구심점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정약용(丁若鏞) 형제도 처형되거나 귀양길에 올랐다. 정약종(丁若鍾)은 진주목사 정재원의 셋째 아들로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군 조안면 능내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이익을 스승으로 섬겼는데 천성이 정직하고 모든 일에 성실했다. 서학 서적에 깊이 심취해 당대에 교리 지식이 가장 뛰어난 인물로 인정받았다. 그는 1791년(정조 15) 신해박해 때 형제들과 친구들이 모두 배교하거나 천주교를 기피했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켰고 그 뒤 한문본 교리책에서 중요한 것만을 발췌해 《주교요지(主敎要旨)》라는 책을 써서 천주교를 보급하는 데 커다란 공을 세웠다. 그러나 1801년(순조 1) 2월에 체포되어 같은 달 26일에 서소문 밖에서 처형되었다.
- 2012/08/10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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