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인양요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천주교도에 대한 박해 와중에서 리델(Felex Clau Ridel) 신부가 조선을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페롱(Stanisas Feron), 칼레(Adolphe Nicolas Calais) 등의 프랑스 신부와 연락을 취하면서 지방에 은신해 있었다.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 그들은 리델로 하여금 충청도 해안에서 배를 타고 천진에 가서 프랑스 극동 함대 사령관 로즈(Pierre Gustave Roze) 제독에게 조선 내의 천주교도 박해 사실을 알리게 했다. 두 신부와 천주교도의 구출을 위해 조선에 군함을 출동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로즈는 북경 주재 프랑스 대리공사 벨로네(Henri de Bellonet)에게 즉각 이를 알렸다.

벨로네는 가까운 시일 내에 조선을 쳐서 국왕을 갈아 치울 것이라는 내용의 공문을 청국의 총리아문에 보냈다. 조선은 청국의 속방이기는 하지만 정교는 자주에 속한다고 하니 종교 문제로 벌어진 이 사태에 대해 청국은 조용히 있으라는 뜻이었다. 경악한 청국의 총리아문사무(總理衙門事務) 공친왕이 조선과 프랑스 사이의 중재에 나섰다. “조선에서 천주교도를 박해했다면 무력을 행사하기보다는 우선 진상을 조사해야 할 것이고, 조선은 천주교도 박해에 대해 할 말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양측에 통보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대원군은 “조선의 국법 질서를 어지럽힌 자들을 다스리는데 프랑스가 웬 참견이냐?”는 식이었고, 로즈 제독과 벨로네 대리공사는 “진상 조사는 필요 없고 이 기회에 조선을 정복하겠다!”는 식이었다. 아편전쟁, 애로우 호 사건, 태평천국의 난 등을 겪으면서 서구 열강에게 곤욕을 치렀던 청국의 입장에서는 조선이 앞으로 어떠한 곤욕을 치를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대원군이야말로 세계 돌아가는 사정을 모른 채 기고만장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판단이었다.

프랑스는 당시 나폴레옹 3세의 시대였다. 종교의 사명과 국가의 목적을 혼동할 정도로 천주교를 침략 도구로 삼고 있던 때였다. 로즈 사령관과 벨로네 대리공사는 천주교도 박해를 구실로 조선을 개항시키려 한 것이다. 구원을 요청한 것은 종교적 사명에 충실한 프랑스 신부였지만, 받아들인 쪽은 외교와 군사적 목적을 위해 종교를 이용하던 프랑스 정부였다.


덧글

  • 零丁洋 2012/08/06 12:37 # 답글

    서세동참시기 후인들은 당시 사람들을 비난하는데 압도적으로 강한 열강의 노골적인 침략 의도에 대처할 수 있은 방법이나 수단이 있었을까 의문이네요. 일본은 러시아 견제를 위하여, 태국은 영불의 완충지대의 필요성 때문에.... 우리의 운을 우리가 선택할 수 없었던 시기가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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