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군의 천주교 정책 2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18세기 말 천주교는 조선에서 독자적으로 교회를 설립하는 등 교세를 확장해 가지만, 조선 정부로부터 여러 차례 박해를 받기도 했다. 순조 원년의 박해(신유사옥, 1801), 헌종 5년의 박해(기해사옥, 1839)가 그것이다. 그러나 철종 조에는 안동 김씨 세도가들도 천주교에 관대한 태도를 보였고, 그러한 분위기에서 베르뇌(Berneux, 張敬一) 등 열두 명의 프랑스 신부가 입국해 선교 활동을 했다. 게다가 1860년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의 북경 점령 사태는 서양 군대가 조선에도 쳐들어오리라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켰고, 이로 인해 조선에서는 천주교에 입교하려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고종의 즉위는 천주교도의 활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잘 알려져 있다시피 풍양 조씨가 정권을 장악했던 순조, 헌종 때는 천주교도를 탄압했다. 그러므로 고종이 즉위하면서 조대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된 것도 천주교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것이었다. 그러나 곧 대원군이 실권을 장악해 천주교도들은 희망을 가졌다. 대원군의 부인이나 고종의 유모는 착실한 천주교 신자였는데, 이를 모를 리 없는 대원군이 가타부타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천주교에 대한 대원군의 관심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1860년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북경을 점령하자 러시아는 이를 중재해 준 대가로 천진조약을 통해 연해주를 확보했다.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조선과 러시아가 국경을 접하게 된 것이다. 그 후 자주 러시아 인들이 통상을 요구했고, 러시아가 남진한다는 소문도 있어서 대원군과 고관들이 불안해했다. 이때 승지 남종삼(南鍾三)이 프랑스와 동맹을 맺어 러시아의 남침을 저지하자고 건의했다. 조선에서 활동하는 베르뇌 프랑스 주교를 활용하면 가능할 것이라 했다. 대원군도 받아들일 듯했다.

그러나 지방에 가 있던 다블뤼(Dabeluy, 安敦尹) 주교와의 연결이 지체되어 일 진행에 차질이 생겼고 설상가상으로 북경을 다녀온 동지사(冬至使) 이흥민(李興敏)이 청국에서 천주교도를 탄압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게다가 조두순 등도 배외 정책을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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