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의 형 이하전 2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그런데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대사헌 홍원섭, 대사간 이교인, 지평 신헌구가 연명으로 아뢰었다.

제주목에 안치한 죄인 이하전은 다시 엄중하게 신문해 확실하게 법을 바르게 하십시오. 사실을 알고도 고하지 않은 죄인 이긍선에게는 속히 처자까지 사형시키는 법을 시행하소서.

이에 철종은 “번거롭게 하지 말라.”고 했다.

이어 빈청(賓廳, 비변사의 대신이나 당상관이 정기적으로 모여 회의하는 곳)에서 아뢰기를 “제주도에 안치한 죄인 이하전을 다시 잡아다가 신문해 법을 바르게 하십시오.” 하니 철종이 답하기를 “마땅히 처분이 있을 것이다.” 했다.

이어 철종은 다음과 같이 하교했다.

내가 이 일에 대해 여러 차례 생각했고 앞뒤의 조사 서류를 참작해 보았더니 난의 배후도 그였고, 우두머리도 그였다. 지금 국론을 안정시키고 백성의 뜻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것이 오늘날 더할 수 없는 급선무이니 제주에 유배된 가시울타리 속에 갇힌 죄인 이하전을 사사하도록 하라.

- 《철종실록》 권14, 철종 13년

이하전이 사사되자 완성군(完城君) 희()의 양자로 들어왔던 이하전의 아버지 이시인은 파양(罷養)되어 다시 생가의 족보에 올랐다. 그 대신 밀산군(密山君) 찬(澯)의 9대손 이익주를 완성군의 후계자로 삼아 덕흥대원군의 제사를 받들게 했다.

촉망받던 종실 이하전이 이렇게 안동 김씨들에게 화를 당하자 백성들 중 원통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듣고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헌종이 죽고 철종을 세울 무렵 정치적으로 풍양 조씨 계열인 권돈인이 이미 이하전을 후계자로 세우기를 주장한 적이 있기 때문에 안동 김씨는 이 기회를 이용해 아예 후환을 없애 버렸던 것이다.


덧글

  • 零丁洋 2012/08/01 16:30 # 답글

    안동 김씨의 이런 행동이 어떻게 당시 유림들에게서 묵인된 것이죠? 지금의 타진요 처럼 건수가 생기면 엄청 시끄럽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이 유생들의 성정이 아닌가요? 당시 유림의 태도가 궁금하내요?
  • 블레이드 2012/08/02 09:11 #

    옛날 유림들이나 요즘 지식인들이나 비슷한 것 같던데.... 정의를 외치는 것 같지만, 막상 자기들 출세줄 잡고 있는 족에는 함부로 입 놀리지 못하더라구요.
  • 零丁洋 2012/08/02 11:21 #

    제 생각인데요? 당시 안동김씨가 나름데로 사림의 민심을 장악한 건 아닐까요? 이후 실세하여 그들의 역사가 부정적으로 기술된 것은 아닐까요? 어디서 본건데 조선이 500년을 유지한 비밀이 외척의 세도라고 하더군요. 그런 의미에서 안동김씨 세도가 지나친 거은 사실이나 외척의 세도를 당시의 사람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수용한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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