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대사헌 홍원섭, 대사간 이교인, 지평 신헌구가 연명으로 아뢰었다.
제주목에 안치한 죄인 이하전은 다시 엄중하게 신문해 확실하게 법을 바르게 하십시오. 사실을 알고도 고하지 않은 죄인 이긍선에게는 속히 처자까지 사형시키는 법을 시행하소서.
이에 철종은 “번거롭게 하지 말라.”고 했다.
이어 빈청(賓廳, 비변사의 대신이나 당상관이 정기적으로 모여 회의하는 곳)에서 아뢰기를 “제주도에 안치한 죄인 이하전을 다시 잡아다가 신문해 법을 바르게 하십시오.” 하니 철종이 답하기를 “마땅히 처분이 있을 것이다.” 했다.
이어 철종은 다음과 같이 하교했다.
내가 이 일에 대해 여러 차례 생각했고 앞뒤의 조사 서류를 참작해 보았더니 난의 배후도 그였고, 우두머리도 그였다. 지금 국론을 안정시키고 백성의 뜻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것이 오늘날 더할 수 없는 급선무이니 제주에 유배된 가시울타리 속에 갇힌 죄인 이하전을 사사하도록 하라.
- 《철종실록》 권14, 철종 13년
이하전이 사사되자 완성군(完城君) 희()의 양자로 들어왔던 이하전의 아버지 이시인은 파양(罷養)되어 다시 생가의 족보에 올랐다. 그 대신 밀산군(密山君) 찬(澯)의 9대손 이익주를 완성군의 후계자로 삼아 덕흥대원군의 제사를 받들게 했다.
촉망받던 종실 이하전이 이렇게 안동 김씨들에게 화를 당하자 백성들 중 원통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듣고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헌종이 죽고 철종을 세울 무렵 정치적으로 풍양 조씨 계열인 권돈인이 이미 이하전을 후계자로 세우기를 주장한 적이 있기 때문에 안동 김씨는 이 기회를 이용해 아예 후환을 없애 버렸던 것이다.
- 2012/08/0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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