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응 외에 또 다른 종실인 이하전은 어떤 인물인가. 처음 이하전이 과거에 응시할 때에 늘 힘이 센 자를 많이 모집해 시장에 데리고 들어가 부호 자제들과 자리를 다툰 일이 있었다. 그 당시 안동 김씨 세도가의 자제들과 서로 다투다가 크게 낭패를 당하자 이하전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맨발로 시장 밖으로 도망쳐 나가 종실로서 세도가 사람에게 무시당한 것을 분하게 여겨 손바닥으로 가슴을 치며 하늘을 우러러 크게 울부짖기를 “하늘이여. 원통하도다!”라고 했다. 종실로서 매사에 살얼음을 밟고 깊은 연못에 임한 듯 조심하던 흥선군의 눈에는 이하전의 거침없는 행동이 철없이 날뛰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안동 김씨는 종실로서 자긍심이 강하고 위풍당당한 이하전의 태도를 몹시 눈꼴사납게 여겨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1862년(철종 13) 7월 오위장 이제두가 이하전이 김순성과 이긍선 등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어 모반을 도모했다는 무고를 했다. 그리하여 곧바로 수사가 이루어졌다. 이 옥사의 수사 과정에서 수많은 연루자가 드러났는데, 위정척사 운동의 거두 이항로도 그 집에 이돈이라는 인물을 숨겨 주었다는 김순성의 주장으로 관청에 불려 나가 칼을 쓰고 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이 옥사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그 배후는 도정궁(都正宮) 이하전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하전을 잡기 위해 짜인 각본대로 수사는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임시로 죄인을 신문하기 위해 설치된 기관인 국청(鞫廳)에서 수사 결과를 철종에게 보고하자 철종은 이렇게 말했다.
이 죄수의 이름이 수사 과정에서 나올 줄은 정말 생각지 못했다. 그의 집안이 대대로 규모를 지켜 온 것이 어떠했으며, 여러 조상들이 돌보아 준 독실하고 후함이 어떠했던가. 그런데도 후손이 된 사람이 단정한 마음가짐으로 스스로 올바르게 행동하지 못하고 불만을 품은 부랑배들과 함께 어울려 다니다가 결국 그들의 손아귀에 희롱당하는 것을 면치 못했다. 다만 역적질을 도모한 사실을 그가 이미 몰랐다고 했으니 이는 미련하고 몰지각한 사람에 불과한 것이다. 이 옥사가 처음 일어났을 때부터 나의 마음은 실로 애통스러운 점이 있었다. 그리고 여러 번 조사 서류를 열람해 보았는데 그때마다 그럴까, 어찌 그렇겠는가 하는 마음이 들었고 분명히 동조했다는 흔적을 보지 못했다. 특별히 실오라기 같은 목숨을 용서해 주어 제주도에 안치(安置)시키되 바로 압송하도록 하라.
- 2012/07/3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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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31 16:06 #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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