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전은 1842년(헌종 8) 완창군 이시인의 아들로 출생했다. 1849년 헌종이 후사 없이 죽자 이하전은 왕족 중 기개 있는 인물로서 유력한 왕위 계승자 후보 물망에 올랐다. 그러나 외척인 안동 김씨들의 강한 반대로 후계자에서 탈락했다. 그리하여 그는 철종이 즉위한 뒤 늘 안동 김씨의 감시 대상이었고 미움을 받아 왔다. 그 뒤 그의 관력이라고는 돈녕부참봉, 도정 등이 고작이었다.
철종은 슬하에 여러 아들을 두었으나 모두 일찍 죽었다. 그는 술과 여자를 너무 좋아했다. 안동 김씨 핵심 당로자는 철종에게 후사가 없음을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종실 자손 중 똑똑하고 명망이 있는 자는 남모르게 없애고자 했다.
종실 중에는 이하전 외에 또 흥선군 이하응(李昰應)이 있었다. 흥선군은 재주와 지략이 뛰어나 난세의 간웅으로도 불린다. 그러나 흥선군 시절 집이 가난해 죽으로 연명하고 어떤 때는 끼니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안동 김씨 세도치하에서 그는 성품이 경솔하고 방탕한 것처럼 거짓 행동을 해 무뢰한과 잘 어울렸다. 기생집에 가서 놀다가 가끔 부랑자에게 욕을 당하니 사람들이 그를 궁도령이라고 놀렸다. 매번 여러 김씨에게 아첨도 했으나 김씨 세도가들은 그 사람됨을 좋지 않게 여겨서 모두 냉정하게 대했다.
흥선군은 평소 난초를 잘 그렸다. 그의 난초 그리는 실력은 스승 김정희도 인정했다. 일찍이 돈 수백 냥을 꾸어 고운 비단을 사서 그 위에 손수 난초를 그려 병풍 하나를 매우 아름답게 만들었다. 김병기에게 바치고 싶어도 퇴짜를 맞을까 봐 김병기의 비서를 통해 부드러운 말로 바쳤다. 김병기가 받기는 했으나 한 번 펴 보지도 않고 바로 광에 처박아 두니 흥선군은 크게 실망했다.
흥선군의 맏아들 이재면은 똑똑하지 못했다. 훙선군은 그 아들을 과거에 급제시키고자 했으나 꾀를 낼 수가 없었고 기회도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의 생일을 며칠 앞두고 부인 민씨(閔氏)와 작전을 꾸몄다. 그래서 비녀와 옷가지를 전당 잡혀 생일잔치를 차리되 기생과 악단까지 부르기로 했다.
- 2012/07/27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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