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양 조씨의 세도정치 2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조만영의 아들 조병구는 조병현과 함께 풍양 조씨 세도의 중심인물로 부상해 정권을 운영했다. 특히 그는 삼촌인 조인영이 영의정에 오르자 이에 세력을 합해 안동 김씨 세도와 권력을 다투게 되었다.

조득영의 아들 조병현은 1822년 문과에 급제한 뒤 예조판서, 형조판서, 대사헌, 병조판서, 이조판서를 두루 역임했다. 1843년에 김조근의 딸인 헌종비 효현왕후가 죽고 이듬해 홍재룡의 딸이 비(효정왕후)로 간택되자, 조병현은 풍양 조씨의 막강한 권력이 홍씨에게 분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김재청의 딸을 경빈(慶嬪)으로 맞도록 했다.

그는 궁인(宮人)에게 몰래 뇌물을 주어 효정왕후가 월경이 있는 시기를 틈타 헌종을 모시게 해 헌종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이런 짓을 두세 차례 하자 헌종은 아예 왕비의 처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러한 일이 있었을 때 정원용이 간하기를 “전하께서는 어찌 종묘를 생각하시지 않습니까.”라고 했다.

그러나 헌종은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일어나 대궐로 돌아가 버렸다. 정원용은 따라가 눈물을 흘리며 간하면서 입으로 곤룡포를 물고 늘어졌으나 헌종은 끝내 뿌리치고는 경빈을 맞이해 버렸다.

조병현은 사람됨이 기민하고 교활했다. 어려웠던 시절에 조병현이 조병구의 집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조병구의 신임을 받고 있는 한 관상쟁이를 보았다. 그는 매우 공손한 말로 관상쟁이를 자기 집으로 데려왔다. 그러고는 태도를 바꿔 관상쟁이를 방 안에 가두고 칼을 뽑아 목에 들이대고는 “너는 내가 장차 귀하게 될 관상이라고 조병구에게 말해 주거라. 그렇지 않을 경우 너를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했다. 관상쟁이가 그를 자세히 쳐다보고는 웃으면서 “당신은 마땅히 귀하게 될 관상입니다. 내 어찌 이빨을 아끼겠습니까.”(《한사경》)라고 했다.

조병현은 기뻐하면서 칼을 던지고는 물러섰다. 그 뒤 관상쟁이는 조병구에게 조병현의 관상이 좋다는 말을 했다. 이에 조병구는 조병현을 심복으로 삼았고, 조병현은 출세해 이조판서까지 올랐다. 조병현은 조만영, 조인영, 조병구 등과 함께 풍양 조씨 세도정치의 핵심 인물이 되어 안동 김씨 김홍근, 김유근 등과 권력 다툼을 전개했다.

한편 철종이 1863년(철종 14) 12월 8일 후사 없이 죽자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 두 척족이 대립하게 되었다. 즉 철종비 철인왕후의 척족인 안동 김씨 세력과 익종비인 신정왕후의 친정인 풍양 조씨 세력이 정치적으로 날카롭게 대립하게 된 것이다. 당시 왕위 계승의 지명권을 쥐고 있던 신정왕후는 그동안 세도를 부리던 안동 김씨 세력을 누르기 위해 장헌세자의 증손 흥선군(興宣君) 이하응(李昰應)과 제휴해 흥선군의 둘째 아들 명복(命福, 고종)을 왕위에 오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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