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은 비록 가정적으로는 순탄치 못했지만 정치문화적으로는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열세 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성종은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던 종친 구성군 이준(李浚)을 유배에 처했다. 이는 어린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세조의 전철이 되풀이될까 우려해서였다.
성종은 세조 때부터 편찬해 오던 《경국대전》을 완성, 반포했다. 《경국대전》은 조선 왕조 통치의 전거가 되는 법전이었다. 이로써 조선은 명실상부하게 《경국대전》에 기초해 국가를 구성,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밖에 토지 소유의 집중을 방지하기 위한 관수관급제(官收官給制) 실시, 김종직 일파의 신진 사림 등용, 《동국여지승람》, 《동국통감》, 《국조오례의》 등의 각종 서적 간행, 여진 정벌 등 조선 왕조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기초가 성종 대에 완성되었다. 아울러 세조가 폐지한 집현전을 대신해 홍문관을 설치했다. 이를 통해 학문을 발전시키고 왕의 자문에 응하도록 했다.
성종은 폐비 윤씨를 비롯해 세 명의 왕비와 열두 명의 후궁을 두었고, 재위 26년 만인 1494년에 세상을 떠났다. 승하했을 당시 서른여덟 살이었다. 죽은 후 문운을 이룩했다는 의미에서 성종이라는 묘호를 받았다. 능은 선릉(宣陵)으로서 본래 경기도 광주에 있었는데 현재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으로 옮겼다. 시호는 강정(康靖)이다.
- 2012/06/13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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