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탄(秋灘) 오윤겸(吳允謙)의 가계(家系)와 치적(治積) └ 성고선생 칼럼

해주오씨는 16-17세기 조선의 유력가문이었다. 해주오씨에서는 입덕(立德)의 오윤겸, 입절(立節)의 오달제(吳達濟), 입공(立功)의 오명항(吳命恒) 등 3불후(三不朽)를 배출한 가문이다.오윤겸은 성학(聖學)을 바탕으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영의정이 되었으며, 오달제는 병자호란 때 홍익한(洪翼漢)․윤집(尹集)과 함께 3학사의 한 사람으로 청나라에 잡혀가 절개를 지키고 28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으며, 오명항은 이인좌(李麟佐)의 란 때 4로도순무사(四路都巡撫使)로서 적을 토벌해 큰 공을 세웠다. 그리하여 이들 3불후를 같은 서원에 배향하자는 의론까지 있었다. 그러나 그대로 되지는 않았다.

오달제는 오윤겸의 조카요, 오명항은 오윤겸의 고손자였다. 이 3불후 이외에도 해주오씨에서는 문장(文章)으로 숙종 때 대제학을 지난 오도일(吳道一: 오윤겸의 손자), 3형제가 문과에 급제한 숙(肅+羽:영남관찰사)․빈(賓+羽: 지중추부사)․핵(翮: 지평), 문과를 거쳐 형조판서를 지난 숙의 아들 오두인(吳斗寅), 현종의 부마가 된 오두인의 아들 해창위(海昌尉) 오태주(吳泰周), 유명한 학자인 오태주의 아들 오윤상(吳允常)․오희상(吳熙常), 홍경래란(洪景來亂)을 진압한 그들의 동생 오연상(吳淵常) 등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15세기 이전의 해주오씨는 그렇게 현달한 집안은 아니었다. 다만 기호계로서 중앙의 현달한 집안과 혼맥을 통하므로써 가격(家格)을 유지해 올 수 있었다. 『해주오씨족도』(海州 吳 氏族圖)에 나타나는 혼맥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이런 가문이 16-17세기에 갑자기 명문가로 부상한 까닭은 무엇인가?

여기에는 오윤겸의 아버지 오희문(吳希文)의 기가(起家) 열망과 오윤겸의 개인적인 능력과 자질, 인조의 반정공신들과의 학통과 혈연이 다 연관이 있다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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