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의 악용과 사이비 역사학 2 부담스런 이야기

아는 사람은 이미 다 아는 내용이지만, 김태식 교수는 80년대부터, 그러니까 20대라고 알려진 제홍씨가 태어나기 전, 혹은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기시절부터 백제 문화의 영향이 가야의 유물에 나타나는 않는다며, 백제의 영향을 부정하고 다녔다.

그리고 간과하기 쉬운 점 하나. 설사 자기가 몰랐다고 하더라도 남의 논리 그대로 들여놓은 건 변명이 안 된다. 남이 무슨 말 했는지 찾아보지 않고 맘대로 떠드는 것도 문제지만, 또 대개는 어디서 주워들어놓고 그런 걸 자기 주장이라 착각하는 오덕후적 망상이, 원래 용납되는 논리는 아니다. 사람이니까 사소한 실수는 할 수 있지만, 최소한 자랑거리도 될 수 없다.

또 자기는 남의 주장임을 밝히지 않고 도용해놓고, 이렇게 만든 자기 글은 저작권 주장하는 것도 개그다. 별로 인용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은데도 이런 짓 하는 것도 전형적인 오덕후적 특권의식이겠지만, 일단 넘어가자.

재미 있는 점은 그런 주장을 하던 김태식 교수가 최근 들어서는 나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역시 이유는 간단하다. 이런 논리가 전형적인 고고학의 악용이라는 점을 알만한 사람이 다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백제의 정치적 영향력과 가야 유물의 변화는 별 상관없는 문제다. 앞서도 강조했듯이, 유물의 변화는 장기간에 걸친 문화적 보여주는 것이지, 정치적 변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역으로 문화적 변화는 정치적 변화와 상관없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극단적으로 문화는 적에게서도 흘러들어올 수 있는 것이니까. 70년대 모스크바 유적에서 펩시콜라 깡통 발견되었다고, 소련이 미국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고 한다면 미친 소리가 된다.

이렇기 때문에 유물 해석은 어떻게 갖다 붙여도 성립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대로 유물에 의거한 해석은 반대로도 할 수 있는 여지가 남기 십상이다. 이 경우만 하더라도, 유물의 변화에 집착하자면 가야 유물에 왜의 영향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왜가 이 지역을 정복하고 있었다는 논리도 성립하지 않는다. 같은 논리도 자기 유리한 것만 골라서 해석하는 게 사이비 역사학의 특징이니 더 설명할 필요는 없겠다.

그리고 유물에 대한 해석은 고고학자마다 다를 수도 있어서 확실한 근거로 삼기도 곤란하다. 직접 확인해보고 다녔지만, 어떤 고고학자는 무슨 근거로 백제나 왜의 영향력이 없었다 단언하느냐고 반론도 하고 누구는 영향이 없었다고 결론 짓기도 한다. 또 영향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영향이 어느 정도였고, 이를 역사와 어떻게 연관시켜야 할 지에 대해서도 미묘한 문제들이 얽히기 때문에 확실한 해답을 얻기가 곤란하다.

그래서 오히려 이 부분에 대해 밝은 사람들은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려 하지 않는다. 뒤집어 말하면 김태식 교수는 고고학에 무식했기 때문에 용감하게 결론을 지은 것이고, 그 덕분에 최근에는 자기가 회장을 지낸 학회에도 발길이 뜸해질만큼 민망한 처지에 처했다. 앞서 광개토왕비문을 근거로 왜의 한반도 정복을 주장한 것처럼 이 역시 철지난 논리 꺼내 들고 선각자나 된 것처럼 나댄 것이다. 기성학계 욕하면서도 배울 때는 꼭 이렇게 못된 것만 배운다.


덧글

  • 제홍씨책사풍후 2015/03/25 12:45 # 답글

    왜 내가 쓴 탄금대전투 글 표절하는겁니까.
  • 제홍씨책사풍후 2015/03/25 12:46 # 답글

    달천평야에서 왜군이 중,좌,우로 둘러싸 공격하고 우회로로 충주읍성 공격해 신립군의 우측과 후방을 친다는 것과 '고니시 루이스'란 표현까지 왜 싹 다 표절하고 교수님 머리 속에서 다 나온 것처럼 거짓말쳐대는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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