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인문학계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금기사항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봐달란다 부탁한다고 남의 글을 덜컥 봐주는 것이다.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글쟁이들이 글 봐주는 걸 가지고 ‘금기사항’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게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최근 들어서 후배들 중 자기들 글 봐주지 않는다고 섭섭해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걸 ‘금기’라고 하지만, 확실하게 경험한 경우가 아니면 이걸 금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크게 당해본 사람에게는 심각하다. 그 내막은 이렇다.
보통 자기 글을 봐달라고 하면, 책임지는 곳에 발표되기 이전에 문제점을 파악해서 고칠 수 있도록 충고를 해달라는 게 주 목적이어야 한다. 원칙이 이렇기 때문에 뭘 모르는 경우에 이런 부탁을 받으면 성의껏 읽고 문제점을 짚어주려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난 이후 좋은 꼴을 보기 힘들다. 대개는 봐달라고 한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순진하게 진짜 문제점을 짚어주면 돌아서서 욕한다. 더 나아가 말꼬리 잡고 늘어지며, ‘아무것도 모르면서 헛소리한다’고 악소문 퍼뜨리고 다니기도 한다. 전문가 집단 사이에서도 이런다. 그래서 내막을 아는 사람들은 이에 대해 대응책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상당수의 사람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적당히 읽고 덕담이나 해주는 차원에서 그치고 만다.
필자의 경우, 서로 책임지는 자리가 아니면 아예 봐주지 않는다. 가끔 후배들이 자기 글 봐달라고 하면, 선택을 요구한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만 해줄 건데, 그 자리에서 다른 소리하지 않겠느냐고. 대개는 그런 자리 말고 뒤풀이 자리에서나 개인적인 자리에서 해달라고 한다. 물론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도 박사과정에 진학하기 위해 중요한 논문 봐달라고 하는 걸 끝까지 거절했다. 장본인은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 같지만, 만약 봐주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왜 그렇게까지 비싸게 구느냐고 할 지 모른다. 그러나 이건 그 이후의 경험하지 못한 사람의 얘기다. 대개의 경우 자기 글을 봐달라는 뜻은 ‘적당히 읽고 덕담해달라’는 뜻이다. 그러니 문제점, 특히 구조적으로 고치기 어려운 문제점을 지적해주면 싫어하다 못해 증오하기 십상이다. 적당히 주변사람들의 힘을 입어 자기 글 띄우는 게 목적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봐주지 않아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 해답이 지금 여기서 펼쳐지고 있다. 이른바 풍Q라고 알려진 자가 그 사례 하나를 만들고 있고, 앞으로 본격적으로 시비를 걸겠다고 예고를 했다. 그 계기 덧글을 추척해보면 쉽게 드러난다. 처음에는 좋은 말로 자기 블로그 방문해달라고 한다. 그래놓고 조금 후에는 왜 응답이 없느냐고 예의에 벗어난다고 한다. 자기 글 읽고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이런 소리한 것이다.
여기에 대응하지 않았더니 엉뚱하게 드라마 광개토태왕에 달았던 포스팅에 시비를 걸고 나섰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장문의 시비를 걸겠다고 하니, 잘 봐두시면 왜 금기 같지 않은 금기가 생겨날 수밖에 없는지 이해하기 쉬워질 것이다. 뭘 원했는지, 그리고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뭘 하려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덧글
적잖이 공감되는 부분이군요..
면도날이라느니 사회생활 더배워야겠다느니 하는 쉰소리들이 나오죠.
아니면 아니라고 논리적으로 답하면서 고민해 보던가... =_=;
그래서 윗사람의 것에 대해서는 내가 고생할거 같은 느낌 안들면 걍 패스~
이거 어떤거 같아? 라고 물어보지만 감상을 물어보는게 아니라 좋은 소리 해달라는 듯한 질문이니.
(아니, 우리학교만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