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의 운명 그리고 북연의 성립과 멸망 └ 잡글

어제 드라마 광개토태왕의 내용을 보니, 마지막 회인 오늘에는 고구려가 북위와 후연 연합군을 격파하고 중원의 패자로 나설 모양이다. 그리고 나서 고운을 연의 황제로 만들어준다는 내용일 것임을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물론 실제 역사와는 별 상관없는 드라마 시나리오일 뿐이다. 실제 고운이 황제가 된 과정이 드라마 내용과 완전히 다르다는 점은 이전에 소개했으니 되풀이 할 필요는 없을 것이고. 황제가 되고 난 이후의 운명이나 밝혀보자.

고운이 황제가 되고 나서는 연과 고구려의 관계도 개선되었다. 408년 고운이 즉위하자 북연과 고구려는 사신을 교환하며 화친을 성립시켰던 것이다. 또한, 같은 해에 부인을 황후로, 아들을 황태자로 책봉했다. 하지만 고운은 그 뒤 이렇다 할 만한 업적을 남기지 못하고 불안정한 왕위를 지키려고 노력하던 중인 409년, 측근인 이반(離班)과 도인(桃仁)에게 암살당했다.

이 암살자들을 처단한 사람이 풍발이다. 풍발은 고운이 암살되고 일어난 혼란을 평정하고 자신이 뒤를 이어 즉위했다. 즉위 후, 풍발은 도읍을 용성(龍城)으로 옮기며 국내를 안정시켰다. 또한 앞선 황제 고운의 정책을 이어 고구려와는 화친하고 화북의 강자로 등장한 북위와 대립했다. 그러나 항상 북위로부터 위협을 받아 세력를 떨치지 못했다.

북위의 압박을 받아 나라가 위태로워진 435년, 풍홍은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만약의 사태가 벌어지면 고구려로 망명하여 재기를 도모할 것을 청했다. 436년 북위가 침공하여 백랑성(白狼城)이 함락되자 풍홍은 고구려로 망명을 요청했다. 고구려 장수왕은 수만의 병력을 보내 북위군보다 먼저 용성에 도착해 풍홍과 그 백성들을 구출해갔다.

그러나 망명한 풍홍이 고구려로 와서도 황제처럼 행세하자, 장수왕의 제재를 받았다. 이에 반발하여 송(宋)으로 망명하려다, 436년 북풍(北豊)에서 장수왕이 보낸 군대에게 살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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