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용희는 어떻게 쫓겨났을까? └ 잡글

어제 드라마 광개토태왕을 보니 드디어 모용희가 쫓겨나고 고운이 황제로 등극하는 장면이 연출될 시기가 온 것 같다. 물론 구체적인 장면은 다음 주로 미루어지겠지만, 어떻게 진행될런지는 뻔하다.

고구려와 후연, 북위가 얽혀 벌어지는 전쟁에서 모용희가 되지도 않는 짓을 벌여 나라를 위기로 몰아넣으니 고운이 나서서 해결하려 모용희를 쫓아 낸다는 설정일 것이다. 어차피 뻔히 보이는 그림이니 굳이 ‘스포일러’ 짓을 한다는 가책은 받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물론 실제 역사는 이런 시나리오와 전혀 다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모용보가 죽은 과정부터... 여기서부터 드라마가 보여주는 내용과는 완전히 다르다.

후연은 모용보가 2대 혜민제(惠閔帝)로 등극하고 나서 내란에 시달렸다. 즉위 한지 얼마 되지 않은 397년, 모용보의 서자 모용회(慕容會)가 반란을 일으켰다. 이를 진압했지만 다음해에 일어난 모반으로 모용보는 죽고 난한(蘭汗)이 권력을 잡았다. 하지만 곧이어 모용성(慕容盛)이 난한을 죽이고 황제가 되었다.

모용성도 오래 가지 못했다. 401년에 반란이 일어나 모용성이 난 중에 죽자 모용수의 말년에 태어나 총애를 받았던 또 다른 아들 모용희(慕容熙)가 태후 정씨(丁氏)에 의해 후연의 군주로 옹립되었다. 이 사람이 후연 4대 황제 소문제(昭文帝)다. 그는 모용성이 집권하자, 하간공(河間公)에 책봉된 바 있었다. 400년에 고구려 원정에 선봉으로 종군하여 큰 전공을 세웠다.

그러나 모용희 역시 정권을 오래 유지하지 못했다. 그는 왕후 부씨(苻氏)를 총애하여 각종 토목공사를 남발하는 바람에 국력을 낭비했다. 이렇게 후연이 약화되자 402년과 403년 고구려가 후연을 공격해왔다. 후연은 숙군성(宿軍城) 등을 잃고, 요동 일대를 빼앗겼다. 모용희는 404년에는 요동을 되찾기 위해, 405년에는 거란을 공격하러 출정했다가 여의치 않자 목표를 변경해서 고구려를 공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실패하고 돌아갔다.

모용희는 407년 황후인 부(苻)씨가 죽자 신하들에게 큰소리로 곡하게 한 다음 크게 울지 않는 자들을 처벌했다. 이것이 권좌에서 쫓겨나는 발단이 되었다. 모용희는 황후를 위하여 거대한 무덤을 축조하고 공신들을 순장하려 했다. 무덤이 완성되자 모용희는 부씨의 상여를 직접 메고 장례를 위해 용성을 나섰는데, 이때를 틈타 반란이 일어났다. 이 반란을 주도한 사람이 풍발(馮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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