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사림파는 훈구파라는 강력한 상대세력이 있을 때는 단결하였다. 그러나 선조 조에 훈구세력이 무너지고 사림세력이 정권을 차지하자 사림이 자체 분열해 붕당이 생기고 붕당 간에 당쟁이 치열해졌다. 그러므로 당쟁은 사림정치의 부산물로 보아야 한다. 당쟁이 유독 조선 후기에만 있었던 것도 그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일제 학자들은 당쟁이 분열적인 한국민의 민족성 때문에 일어났다고 한다. 그러면 5천년 역사 가운데 하필이면 조선 후기 200년 동안에만 당쟁이 있었을까?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한 민족성론은 허구일 수밖에 없다.

또한 당쟁처럼 처절한 정쟁이 없었다고도 한다. 적당(敵黨)이나 그에 가까운 사람들까지 일망타진한 행위를 세계사에서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물론 강인한 가족주의적인 전통에서 부모의 원수는 나의 원수라고 생각한 것은 사실이다. 학연을 앞세워 자기 스승만이 옳고 다른 사람의 스승은 그르다고 생각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붕당의 속성일 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투쟁은 더러운 것이다. 단 무치주의의 정쟁과 문치주의의 정쟁은 다르다. 무치주의에서는 무력으로 상대세력을 무찌르기 때문에 통쾌해 보이고, 문치주의에서는 이론으로써 싸우다 보니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또한 문치주의에서는 기록문화가 발달해 시시콜콜한 내용이 다 기록으로 남는다.

그러나 당쟁에서 죽은 사람은 겨우 10여 명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는 정계에서 물러나게 할 뿐이다. 면직․파직․귀향 따위가 그것이다. 쫓겨난 사람들은 정권에 재도전 할 수도 있다. 반면에 무치주의의 영웅들은 죄 없는 농민들까지 끌어다 한꺼번에 죽게 한다. 사람을 많이 죽일수록 영웅의 칭호를 받는다. 그러니 당쟁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그렇다고 반대로 당쟁을 미화할 필요도 없다. 당쟁도 추잡한 권력투쟁이고 보면 더럽기는 마찬가지다.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상대 당을 넘어뜨리거나 헐뜯기 일쑤다. 그럴싸한 명분도 정쟁에서 이기기 위한 괴변이기도 하다. 사림정치의 틀이 좋은 것이라 해서 그 부작용으로 일어난 당쟁도 긍정적이라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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