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實錄)의 편찬 1 └ 성고선생 칼럼

왕이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하늘과 역사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하늘은 추상적이요 관념적인 대상인데 반해, 역사는 실제로 작용하는 힘이다. 왕의 언행을 기록해 대대로 역사의 심판을 받게 하는 것이다.

“군주가 두려워 할 것은 하늘과 역사입니다. 하늘이란 저 푸르고 높은 것을 가리키는 것 이 아니라 바로 이(理)일 뿐입니다. 사관(史官)은 군주의 선악을 만세에 전하니 두렵지 않습니까?”(『정종실록』 권 1, 정종 원년 정월 7일)

역사는 기록을 통해 왕이 하늘의 뜻을 잘 지키고 있는지를 감시하는 것이다. 그러니 하늘보다 역사가 더 두려운 것이다.

문치주의 국가에서는 왕의 일거수 일투족을 매일같이 낱낱이 기록해 그 왕이 죽은 뒤에 실록을 편찬했다. 실록편찬은 단순한 역사기록만이 아니라 왕권을 견제하려는 문사들의 의지가 숨어 있었다. 또한 역사는 사례로서 후대의 정치의 모델이 된다. 이것은 문치주의의 하나의 특징이다. 무치주의에서는 무력으로 우열을 가리면 그만이지만 문치주의에서는 정책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일정한 원칙과 기준이 있어야 했는데 그것이 역사의 사례였다.

그런데 실록이나 실록에 쓰인 자료가 공개되면 사단이 생긴다. 실록의 기록과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들이 기록의 정당성 여부를 둘러싸고 다투는 과정에서 정변이 일어난다. 무오사화(戊午士禍)와 같은 사건이 그 예이다. 그래서 실록은 공개하지 않아 왕도 볼 수가 없었다. 실록의 편찬 시점도 논란의 대상이었다. 바로 다음 왕대에 편찬하는 것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있는 당사자들이 다 죽은 뒤에 편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사실을 생생하게 기록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실록은 다음 왕대에 편찬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사초(史草)를 작성하고 실록을 편찬하는 관원을 사관(史官)이라 한다. 사관에는 전임사관과 겸임사관이 있었다. 전임사관은 예문관 봉교(奉敎, 정 7품) 2인, 대교(待敎, 정 8품), 검열(檢閱, 정 9품) 등 이른바 8 한림(翰林)이었고, 겸임사관은 관계기관에서 파견된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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