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은 왜 만들었을까?1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훈민정음을 만든 동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유교의 예악정치 실현의 일환이라는 설, 대명 외교관계를 원활히 하기 위한 중국 표준 한자음의 정리 과정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설, 혼란해진 조선 한자음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주음부호로서 만들어졌다는 설, 민족적 자주의식에서 백성들을 위해서 독자적인 자국문자를 만들었다는 설 등이 그것이다.

먼저 예악정치 실현의 일환이라는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가?

한국은 신라통일 이후로 당나라의 귀족문화를 배워 왔다. 특히 고려는 당나라 귀족문화의 영향하에 있었다. 정치제도도 그렇고, 문화도 그렇고, 법도 그렇다. 그러나 조선은 주자의 성리학을 새로운 지도이념으로 내세웠다. 조선의 지배층이 고려 말 이후로 성장한 신흥사대부들이었기 때문이다. 주자학은 12 세기에 원나라를 통하여 처음 들어 왔다. 원나라의 주자학은 ·소학·(小學)․·가례·(家禮)․가묘(家廟)․3년상(三年喪) 등을 강조하는 실천적인 주자학이었다. 원나라 허형(許衡)의 주자학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실제로 정몽주 등의 신흥사대부들은 이러한 실천적인 주자학 윤리를 보급하는데 힘썼다. 사회윤리를 불교윤리에서 유교윤리로 바꾸는 것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가 건국된 이후에도 건국 초기에는 정치적인 불안정 때문에 고려 말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세종대에 들어 와서는 명나라로부터 ·4서대전·(四書大全)․·5경대전·(五經大全)․·성리대전·(性理大全) 등 영락3대전(永樂三大全)이 입수되었다. 명나라에서는 제 3대 영락제(永樂帝) 때에 송나라 시대의 유학을 집중적으로 정리하여 영락3대전을 간행했다. 이 중 ·성리대전·은 송대 성리학의 백미였다. 이 책은 세종이 즉위하기 3년 전인 1415년(영락 15)에 호광(胡廣) 등이 편찬한 것으로, 세종은 1419년(세종 1) 12월에 사은사(謝恩使) 경영군(敬寧君) 비(裶)로 하여금 황제가 내려 주는 영락3대전을 받아 오게 했다. 그리하여 세종은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이 책들을 깊이 연구하는가 하면 이 책들을 여러 차례 간행하여 널리 보급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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