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문화1 └ 성고선생 칼럼

조선왕조는 지식인관료들이 지배하는 문치주의 국가였다. 그런데 그 지식의 근원은 중국이었다. 조선은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여 이것을 토착문화와 융합하여 일본․여진 등 이웃민족에게 전파시켰다. 일본인들은 조선을 중국문화를 단순히 일본에 전달하는 교량적인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본에 전파된 문화는 단순한 중국문화가 아니다. 조선에서 소화한 조선문화를 전파한 것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의 지식인인 승려들은 포로인 강항(姜沆)으로부터 주자학을 배웠다. 그러나 이 때의 주자학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연구하여 소화한 퇴계학(退溪學)이었다. 일본의 승려들은 퇴계학 중에서 불교의 선(禪)과 가까운 경(敬)공부, 즉 존양성찰(存養省察)만을 받아들인 것이다.

한국은 일찍부터 외국의 고급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개방적이었다. 유교도 그렇고 불교도 그랬다. 혹자는 이차돈(異次頓)의 순교를 들어 불교를 배척한 것처럼 말하지만 신라는 법흥왕 때 불교를 국교로 삼지 않았는가? 천주교만해도 그렇다. 조선에서는 천주교가 주자학의 원리와 배치된다 하여 박해하기는 했지만 천주교의 전파는 선교사가 파견되어 시작한 것이 아니라 국내의 천주교 신도들이 주문모(周文謨)라는 외국 선교사를 불러들여 선교(宣敎)하게 했다. 그리하여 로마 교황청에서도 이를 이례적이라고 높이 평가하여 복자(福者)를 많이 할당했다고 한다. 기독교를 보라. 기독교가 들어온 지 100여 년밖에 안되지만 지금 한국의 기독교는 국내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활발하게 선교하고 있다. 가히 세계를 제패하려는 기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은 종교의 천국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한국인들이 신앙심이 유별나게 깊어서인가?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외국의 문물을 개방적으로 받아들이는 역사적 경험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종교(多宗敎) 사회를 살아왔다. 여러 종교가 뒤섞여서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것이다.

그러나 종교와 사상 간의 우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시대에 따라 국가의 지배사상이 있게 마련이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국교로 되어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유교, 특히 주자학이 지배사상이었으며, 현재는 기독교가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동양의 종교는 창시자가 신이 아닌 인간으로 되어 있고, 인본주의(人本主義)를 바탕으로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유교는 현실 정치와 사회의 윤리를, 불교는 사람이 죽은 후의 세계를, 도교는 불로장생(不老長生)․신선사상(神仙思想)을 담당했다.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사신신앙(祀神信仰)도 널리 유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 종교나 사상은 조화를 이루면서 공존해 왔다. 아버지는 유교, 어머니는 불교, 할아버지는 도교, 할머니는 무속(巫俗)을 믿어도 한 밥상에서 같이 밥을 먹으며 잘 살고 있다. 그러나 국가적으로는 이들 종교와 사상간에 갈등도 없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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