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경제 3 └ 성고선생 칼럼

외국무역은 중국의 해금령(海禁令)과 같은 쇄국정책에 묶여 사신의 왕래를 틈타 행하는 조공무역(朝貢貿易)이나 여진이나 일본의 요구로 간간히 열리는 중강개시(中江開市)․회령개시(會寧開市)․삼포개항(三浦開港;일본의 요구로 부산포, 염포, 내이포를 개항한 일)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중국의 쇄국정책으로 조선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중계무역을 실시해 막대한 이득을 보았으나 17세기 이후 청나라가 서양세력에 밀려 국경을 개방하자 그러한 이득은 더 이상 챙길 수 없었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이르러 농업기술이 발달하여 잉여생산물이 늘어나고 상품화페경제가 발달함에 따라 상공업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상평통보(常平通寶)와 같은 금속화폐를 주조하여 유통시키는가 하면 외국의 금속화폐를 사오기도 했다. 국내 상업에 있어서도 사상(私商)의 활동이 늘어나는가 하면 관청수공업을 대신해서 민간수공업이 활발해지기도 했다. 도자기․유기․솥․면직물을 만드는 수공업에 분업이 생기기도 하고 대량생산과 상품규격의 통일이 추구되기도 했다. 상공업에 자본을 대는 물주(物主)도 생기고 주문생산도 유행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일정 규모의 상업자본이 형성되기도 했다. 박제가(朴齊家)와 같은 북학파들은 상공업을 발달시켜야 경제가 발전한다고 주장했다.또한 조선후기에는 서해에서 중국과 밀무역이 성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공업의 발달을 기초로 대동법(大同法; 지방 특산물인 공물〈貢物〉을 쌀이나 돈으로 토지에 부과한 조처))이나 신해통공(辛亥通共;1791년에 육의전의 독점상권을 해제한 조처)을 실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공업의 발달이 자본주의 의 맹아(萌芽)였다고 할만한 것은 못되었다. 지식인관료인 양반사대부들의 집권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교의 산업관과 낙후된 경제기반 때문에 조선은 근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서구열강에게 불평등조약을 맺어 각종 이권을 넘겨주고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었다. 일본은 조선의 원료를 값싸게 들여다가 상품을 만들어 비싸게 파는 방법으로 원시축적과정을 거쳐 자본주의를 발전시켜 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룩한 경제발전을 식민지근대화론으로 포장하여 일본이 한국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일본 근대화를 위한 것이지 한국의 근대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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