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살펴본 상황에서, 단독으로 위기를 타개할 수 없었던 신라가 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 뿐이다. 고구려의 원조를 받는 것 이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그것도 직접적인 군사원조여야 했다.
어찌 보면 자체로서는 지나친 요구를 하는 것도 아니다. 한반도 남부의 정세를 주도하려는 백제의 정책 때문에 핍박을 받아 불가피한 선택을 했던 것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런 난국에 봉착했던 이유는 고구려에 접근했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에 책임을 져 달라는 정도의 부탁을 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사실 내물왕으로서야 내심 이런 선택을 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배경이야 어쨌든 간에 세상에 공짜로 원조를 제공해 줄만큼 인심 좋은 국제관계는 없다. 도와준 만큼 어떤 형태로든 반대급부를 받아내려 한다. 도움을 받는 만큼 신라는 고구려에 종속되지 않을 수 없다. 나중에 일어난 일이기는 하지만, 내물왕이 직접 광개토왕에 조공을 바쳤다는 기록도 나타난다.
내물왕이라고 받은 만큼 주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모를 턱도 없고 나중에 어떤 사태로 발전할지 몰랐을 리도 없다. 그럼에도 이런 선택을 해야할 만큼 신라의 사정이 절박했다. 그런 만큼 내물왕이 고구려의 광개토왕에게 사신을 보내 지원을 호소한 것은 마지막 카드를 써버리는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선택을 해야할 만큼 신라의 입장은 절박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굳이 직접적인 군사 원조에 의지할 필요가 있었겠느냐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굳이 그럴 것 없이, 고구려가 백제에 압력을 넣고 있는 틈을 이용해서 임나가라 방면을 정리하면 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고구려-백제의 전쟁에서는 고구려가 계속해서 개가를 올리고 있는 상황이니, 백제가 임나가라 방면에 눈을 돌릴 틈이 있었겠느냐는 의문은 품어볼 법도 하다. 사실 전체 전략을 두고 보자면 일리가 있는 발상일 수 있다.
하지만 신라의 입장에서 이 정도 생각만으로 버틴다는 발상을 하기는 어렵다. 고구려가 백제에 압력을 넣고 있다는 막연한 정도로는 신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군사작전이란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점만 알고 보아도 왜 신라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지는 분명해진다. 특히 당시는 요즘 같은 수준의 정보 수집이 곤란한 시대다. 상대가 병력을 동원해 공격해오는 타이밍을 정확하게 잡아내기가 근본적으로 어렵다.
- 2011/12/05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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