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은 『성리대전』․4서5경․『자치통감』․『자치통감강목』을 순환하여 강독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으나, 『한서』(漢書)․『송감』(宋鑑)․『명신언행록』(名臣言行錄)․『통감속편』(通鑑續編) 등의 중국 역사책들도 읽었다. 역사는 현실정치에 참고할만한 사례일 뿐 아니라 역사책을 편찬하는데도 참고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는 읽지 않았다.
집현전 학사들은 경연․서연 뿐 아니라 세손(世孫)이 있을 때는 강서원(講書院)의 강론도 담당했다. 강서원은 세손의 직속 관속으로 단종이 세손이 된 1448년(세종 30) 3월에 처음 설치되었다. 이 때 집현전 학사인 신숙주와 박팽년이 강서원의 우익선(右翊善)과 좌익선(左翊善)이 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집현전 학사들은 종실자제를 가르치는 종학(宗學) 교관이 되기도 했다. 종학 교관은 박사(博士)라 했다. 1428년(세종 10) 7월에 종학이 처음 설치되었는데 이 때 성균관 직강 김말과 집현전 부수찬 남수문이 박사가 되었다.
문한(文翰) 중에는 문장(文章)=강론(講論)과 사한(詞翰)=제술(製述)이 있다고 했다. 제술에 해당 하는 것은 글을 짖는 것 이외에 책을 편집하거나 주석 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제술 업무 중에는 국왕의 명령을 대신 짖는 일, 시정(時政)을 기록하는 일, 사대교린(事大交隣) 문서를 짖는 일이 포함된다고 했다. 이러한 일들은 예문관․춘추관․승문원의 고유 업무이다. 그러나 집현전 학사들이 글을 잘 하기 때문에 이러한 일에 차출되었을 뿐이었다. 중국 사신이 성균관 문묘에 알성(謁聖)할 때 집현전 학사들을 가성균관직(假成均館職)을 주어 동참하게 한 것도 그들이 글을 잘 하기 때문에 사신과 학문을 토론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책을 편찬하거나 주석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에도 집현전 학사들이 글을 잘 하기 때문에 차출된 것이지 이것이 그들의 고유 업무는 아니었다. 집현전 학사들이 과거시험의 시관(試官)이 되거나 외국에 사신으로 가는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 2011/11/3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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