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집현전의 역사를 세 시기로 구분해 본다면 세 시기 동안 끊임없이 수행해 온 일은 경연․서연에서의 강론이었다. 세종은 즉위한 지 약 두 달 뒤부터 매일 같이 경연에 참석했다. 어느 때는 하루에 세 번 참석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전임 경연관이 없이 다른 관직을 가진 사람들이 경연관이 되었다. 그러나 집현전이 설치된 뒤에는 집현전 학사 2-3사람과 대언(代言) 한 사람이 참석했다. 다만 경전에 밝은 윤회(尹淮)는 예외로서 늘 경연에 참석하게 했다. 어떤 때는 윤회 한 사람만 경연에 참석시키기도 했다. 어머니가 죽었을 때는 도리상 경연을 일시 폐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태종이 죽었을 때는 3년 동안 경연을 폐할 수 없다 하여 경연을 계속했다. 사신이 왔을 때나 출판하는 책을 직접 교정 볼 때는 바빠서 경연을 폐하는 수도 있었다. 그러나 1439년(세종 21) 3월 이후에는 건강이 악화되어 경연을 열지 못했다.
경연의 교재는 주로 경전과 중국 역사책이었다. 그 중에서도 『4서대전』과 『5경대전』, 『성리대전』 등 영락 3대전(永樂三大全)과 『자치통감』을 열심히 강독했다. 영락 3대전은 명나라 태조 영락 13년(1415)에 주석을 붙여 새로 간행한 책으로, 11년 뒤인 1426년(세종 8) 3월에 중국 사신 윤봉(尹鳳)이 왔을 때 『송사』(宋史)와 아울러 황제에게 하사해 줄 것을 부탁하여, 진헌사(進獻使) 김시우(金時遇)로 하여금 받아오게 한 것이다. 이때 『송사』 대신 『자치통감강목』을 3대전과 함께 가져왔다.
『성리대전』은 1428년(세종 10) 3월부터 4년간 연구하여 1432년(세종 14) 2월부터 1434년(세종 16) 3월까지 경연에서 2년만에 독파했다. 그런데 내용이 어려워 경연관들도 잘 모몰라 중국 사신이 왔을 때 물어보아도 잘 몰랐다고 한다. 그러니 세종대의 『성리대전』에 대한 이해는 그리 깊지 않았던 것 같다. 『4서5경대전』도 모두 독파했다.
경연관들은『자치통감』(294권)은 양이 많아 경연의 교재로 적합치 않다고 했다. 그리하여 『근사록』을 읽을 것을 권했다. 그러나 세종은 이 책의 강독을 고집했을 뿐 아니라 1434년(세종 16) 6월부터 이에 대한 주석(註釋) 작업을 시작하여 1년 뒤에 간행했다. 명나라에서도 이 책에 대한 새로운 주석을 내지 못했는데 세종이 이를 시도한 것이다. 세종은 이 책의 주석을 교정보기 위하여 경연도 폐했다. 너무 열심히 교정을 본 나머지 눈병이 심해졌다고 한다. 『자치통감』뿐 아니라 주자의 『자치통감강목』도 주석했다. 이를 『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이라 한다. 사정전은 세종이 경연을 열던 궁전의 이름이다.
- 2011/11/26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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