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현전이 하는 일 중의 하나는 문한(文翰)을 다스리는 일이었다. 『경국대전주해』에
“치(治)한다는 것은 공(攻)한다는 뜻이며, 공(攻)한다는 것은 전력(專力)한다는 말이다. 문한(文翰)의 문(文)은 문장(文章)을 가리키고, 한(翰)은 사한(詞翰)을 가리킨다.” 문장은 문장박학(文章博學), 즉 문학(文學) 또는 학문(學問)을 의미한다. 이때의 문학은 순수문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 또는 학문을 토론하는 것을 말한다. 학문의 토론은 경적(經籍))을 바탕으로 하는 수밖에 없다. 경적에 대해서는 역시 『경국대전주해』에
“경서(經書)․전기서(傳記書)제자서(諸子書)․역사서(歷史書)를 말한다.”
고 했다.그러므로 문장이란 경서류․전기류․제자백가류․사서류에 대한 연구와 토론을 의미한다. 이 중에서도 특히 경서와 역사책에 대한 연구와 토론이 중심이었다. 집현전의 하는 일 중에 강론경사(講論經史)란 말이 많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세종의 학문이 경전을 체(體)로 하고, 역사를 용(用)으로 헀다고 한 바 있다. 이것은 유학의 기본이기도 하다. 세종대에는 유교적 문물제도를 갖추기 위해 경사(經史)의 연구가 필요했다. 경전은 그 기초이며, 역사는 그 사례이다. 세종은 우선 젊고 똑똑한 사람들을 골라 집현전 학사에 임명하고 이들에게 우선 경사자집의 서적들을 그 재질에 따라 나누어주어 연구하게 했다. 그들의 자질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필요하면 휴가를 주어 집에서나 절에 가서 공부하도록 했다.
집현전 37년간의 역사를 시대구분하자면 대체로 세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제1기는 1420년(세종 2)부터 1427년(세종 9)까지로 처음 10년은 이들을 훈련시키는데 역점을 두었다. 단 집현전 학사들의 고유 업무인 경연과 서연의 참여는 처음부터 있어 왔다. 제2기에 해당하는 1428년(세종 10)부터 1436년(세종 18)까지는 이렇게 양성한 집현전 학사들을 동원하여 각종 문화사업을 벌리고 자기가 정치를 수행하는데 자문역할을 하게 했다. 세종 조의 문화사업은 대체로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수행된 것이다. 필요한 경우에는 집현전 학사의 수를 32명으로까지 늘이기도 했다. 제3기는 세종이 병으로 정사를 돌보기가 어려웠던 1437년(세종 19)부터 집현전이 혁파된 1456년(세조 2)까지로 이때는 집현전 학사들이 성장하여 정치에 간여한 시기이다. 특히 언관으로서 자기들의 주장을 펴는 시기였다. 조정 중신들은 대부분 집현전 출신이었고 문종․단종 조에 왕권이 취약해진 틈을 타서 집현전 출신의 활동이 활발해진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세조 조 이후의 훈구파를 구성하는 핵심세력이 되었다. 따라서 집현전의 본래의 기능을 이들에게 기대할 수 없었다. 집현전이 혁파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물론 집현전 학사 중에 성삼문․박팽년․이개․유성원 등 일부 집현전 학사들이 세조를 반대하는 사육신의 중심 인물이었기 때문에 집현전 혁파의 구실을 제공하기는 했다.
- 2011/11/25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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