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현전(集賢殿)은 어떤 기관인가? 6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국내뿐 아니라 중국에 가는 사신 편에도 새로운 판본이 있으면 계속 사오게 한 것이다. 세종은 사신들로 하여금 유리창(琉璃廠)이라는 백화점의 서점 근처에 숙소를 정하게 하고 새로 나온 책이나 판각들을 두 부씩 사오게 했다. 혹 낙질(落帙)이 있을 것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미 절판된 책 중에 필요한 것은 황제에게 편지를 써서 하사 받았다.

이렇게 수집된 책들 중에 긴요한 것은 주자소(鑄字所)에서도 찍어서 배포했지만 각도 감사들에게 찍어 올리게 하여 집현전을 비롯한 각 기관이나 대신들에게 배포했다. 예컨대 1425년(세종7) 10월에 충청․전라․경상감사에게 명나라에서 가지고 온 『성리대전』과 4서 5경 대전을 찍을 종이 수천 첩씩을 바치게 했고, 1427년(세종 9)에 경상․전라․충청감사에게 『성리대전』『5경대전』중에서 『시경』과 『춘추』를 각 50건씩 목판으로 찍어 올리게 하여 2품 이상의 문신과 6대언(六代言), 집현전 박사 이상에게 나누어 준 것, 1429년(세종 11) 4월에 강원감사에게 『4서대전』 50부를 찍어 올리게 하여 종감(宗監)에 4부, 집현전에 4부, 나머지는 문신들에게 나누어 준 것 등이 그 예이다.

이렇게 하여 집현전 도서관에는 많은 책들이 모여 기존의 시설로는 이를 수용할 수가 없어서 1429년(세종 11)에는 궁성 서문 안에 집현전 건물을 새로 짖고, 그 북쪽에 그 서고인 장서각(藏書閣) 5칸을 세워 벽마다 서가를 설치하여 경사자집(經史子集) 4부(四部) 분류체계에 의하여 도서를 분류, 수장했다.

집현전 도서관은 일반에게 공개된 것이 아니라 왕을 비롯한 왕족, 관료들에 한해서 이용할 수 있었다. 책은 집현전 안에서만 볼 수 있었으나 특별한 경우에는 외부 대출도 허용되었다. 경연에 책을 내 갈 때는 내시가 오매부(烏梅符)라는 도서 대출증을 보이고 가져갔으며, 동궁(東宮)에 책을 내 갈 때는 황양부(黃楊符)라는 도서 대출증을 보이고 가져갔다. 각 관청에서 참고할 일이 있으면 관원을 보내어 와서 보게 했으며, 부득이하여 책을 빌려가려면 임금에게 아뢴 다음 싸인을 하고 빌려갔다가 일이 끝난 뒤에 곧 반납하게 했다. 그런데 빌려간 책을 반납하지 않는 사례가 많아 3년에 한 번씩 정리하도록 하고, 담당자가 갈릴 때마다 도서의 수량과 대출 현황을 문부에 적어 인계하게 했다. 홍문관 도서관도 마찬가지였으나 궁중에 책을 드릴 때 상아패(象牙牌)를 쓴 점이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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