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사상 2 └ 성고선생 칼럼

고려말의 불교에 대한 배척은 3 단계로 이루어졌다. 첫 단계는 원나라로부터 주자학 서적들을 도입하여 연구하는 단계이고, 두 번째 단계는 연구된 이론을 통하여 불교의 타락과 부패를 공격하는 단계였으며, 세 번째 단계는 불교이론 자체를 공격하는 단계이다. 이제현(李齊賢), 이색(李穡), 정도전(鄭道傳)은 각 단계의 대표적인 학자들이다. 그러나 정도전의 『불씨잡변』(佛氏雜辨)을 통한 불교비판이 있기는 했으나 정치적인 주장에 불과했고 불교세력이 원래 커서 졸지에 그 세력을 제거하기는 어려웠다. 그리하여 태종․세종대에 이르러서야 사원의 수를 대폭 줄이고 그 재원을 국가로 환수할 수 있었다. 환수된 재원의 일부는 유학교육기관을 활성화하는데 투입되었다. 그러므로 이 때의 주자학은 정치적․사회적 목적으로 동원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불교와 연관되어 있는 사원과 구귀족 세력을 타도하고, 불교윤리를 유교윤리로 바꾸는데 주력한 것이다.

주자학이 조선왕조의 이데올로기가 되자 불교는 크게 위축되어 왕실이나 민간의 신앙대상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15 세기 만해도 주자학이 아직 독선적인 지위를 차지하지는 못했다. 주자학 이론에 대한 연구가 일천한데다가 불교․도교․사신신앙(祀神信仰)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주자학은 어느 정도 타협적인 태도를 보여 다종교 사회를 유지할 수 있었고 국가도 비교적 건전하게 운영되었다.

그러나 사림이 정치주체가 되면서부터 주자학은 교조화, 독선화되기 시작했다. 조광조(趙光祖)는 도교를 관할하는 관청인 소격서(昭格署)를 혁파할 것을 주장했으며,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율곡(栗谷) 이이(李珥) 등은 이기심성론(理氣心性論)을 중심으로 주자학의 철학적 측면을 깊이 연구했다. 이황은 이기이원론적 주리론(理氣二元論的 主理論)을, 이이는 이기이원론적 주기론(主氣論)을 주장하여 서인과 남인의 당론으로 전수되었다. 이것은 군주와 가부장(家父長)이 중심이 되는 수직적인 유교사회를 건설하는 이론적 기초가 되었다. 주자학의 넓은 분야 중에서 이학지상주의(理學至上主義)의 중앙집권적 문치주의를 합리화하는 이론인 이기심성론이 집중적으로 발달되게 된 것이다.

일본은 임진왜란 때 포로가 된 이황의 제자 강항(姜沆)으로부터 퇴계학(退溪學)을 배워 갔다. 그러나 이를 배운 일본의 지식인들은 중(僧侶)들이었기 때문에 퇴계학 중에서 불교의 선(禪)과 비슷한 존양성찰(尊養省察) 부분만 집중적으로 발전시켰다. 경(敬)공부의 일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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