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사상 1 └ 성고선생 칼럼

조선시대의 지배사상은 유교, 특히 주자학(朱子學)이었다. 주자학은 우주론과 인간의 심성론(心性論)을 철학적으로 정리한 중국 송나라 때의 성리학(性理學)을 주자(朱子)가 집대성한 학문체계이다. 한(漢)나라와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당나라시대에는 고대유교 이론에 주석을 달고 해석하는 훈고학(訓詁學)과 도교․불교가 유행했다. 이러한 사상경향은 당시의 귀족들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송나라 때부터 양자강 이남 지방이 개발되면서 중소지주 출신의 신흥 사대부층(士大夫層)이 대두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귀족세력을 타도하기 위해서 그 이론무기로서 주자학을 들고 나왔다. 고대유교의 실천윤리는 형이상학(形而上學)이 결여되어 사회가 혼란해지자 도교와 불교에게 눌리기 시작했다. 이에 사대부층은 유교의 실천윤리에 도교와 불교의 형이상학을 가미하여 성리학의 이론체계를 개발했고, 이를 주자학으로 집대성한 것이다.

그러므로 주자학은 가장 발달한 이론체계를 갖추게 되었고, 이후 동양사회를 지배해 온 지배사상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송나라 때에는 주자학이 각광을 받지 못했고, 한 때 이단(異端)으로 몰린 적도 있었다.

주자학이 국가의 지배사상이 된 것은 오히려 원나라 때부터였다. 원나라는 처음에 독자적으로 무단정치를 폈으나 차차 중국화해 가면서 포로로 된 유학자들을 통하여 주자학을 국시(國是)로 삼았다. 마침 이 때 고려가 원나라에 복속하여 왕래가 잦았으므로 주자학이 자연스럽게 고려로 흘러들어 왔다.

그런데 원나라의 주자학은 실천적인 부분부터 연구되었다. 허형(許衡)의 유학이 그러했다. 그는 특히 실천윤리의 입문서인 소학(小學)을 중시했다. 그리하여 여말 선초의 사대부들은 가례(家禮), 가묘(家廟), 3년상(三年喪) 등 실천윤리를 보급시키는데 힘썼다.

한편 주자학은 불교배척과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유학이었다. 불교와 연계된 구귀족세력을 타도하기 위해 척불이론(斥佛理論)이 강화되었으며, 외민족인 여진의 금나라에게 남쪽으로 쫒겨가 있을 때 나온 이론이므로 민족적인 성향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고려에서도 무신정권 하에서 성장하기 시작한 사대부들이 원나라의 침입을 받아 민족적인 성향이 강해졌으며, 불교를 신봉하는 구귀족을 타도하기 위해 척불이론을 무기로 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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