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현전(集賢殿)은 어떤 기관인가? 5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그러므로 집현전과 홍문관의 기능은 경적을 관장하는 도서관 기능과 문한을 다스리는 연구 기능, 정책에 자문하는 정책고문 기능 등 크게 세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중 연구 기관으로서 첫째로 갖추어야 할 것이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에 책이 모여 있지 않으면 연구고 자문이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능을 충실히 하기 위해서는 문헌(文獻)을 많이 모아야만 했다. 문헌이란 문(文)과 헌(獻)의 합성어이다. 문(文)은 전적(典籍)을 뜻하고, 헌(獻)은 현자(賢者)를 뜻한다. 책과 책을 통하여 연구하는 학자를 통틀어 문헌(文獻)이라 했던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근대시대의 도서관은 이 두 가지를 겸하고 있었다. 문(文)이 기록정보(記錄情報)라면 헌(獻)은 구비정보를 뜻하는 말이다. 예전에는 지식이 현자(賢者)의 말(口碑語)을 통하여 전수되었기 때문에 사람이 곧 서적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관념이 생긴 것 같다. 그러던 것이 뒤에 현자의 말을 통한 지식의 전수가 적어지고 문자가 발달함에 따라 지식이 대부분 문자를 통하여 전수되었기 때문에 헌(獻)은 본래의 뜻을 잃고 문(文)에 용해되어 문(文)과 같은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1420년(세종 2) 3월에 집현전이 다시 설치되기 전에는 보문각(普文閣)․수문각(修文閣)․집현전(集賢殿) 등 세 도서관이 있었는데 이것이 집현전으로 일원화되었다. 그리고 1년 뒤에는 장서를 늘리기 휘해 중앙과 지방에서 책을 사들이거나 기증 받았다.

“중앙과 지방에서 책을 사들이도록 명령하고, 서적을 바치는 자에게는 그 희망에 따라 혹 은 포백(布帛)을 주고, 혹은 관작을 주어 포상하시다.” 

국비로 책을 사들이는가 하면, 이를 기증하는 자에게는 돈(布帛)이나 관작(官爵)을 내려 주었던 것이다.

책은 국내에서만 사들인 것이 아니었다. 명나라에서도 사들이거나 황제에게 부탁하여 하사 받기도 했다. 권채(權採)의 응제시서(應製詩序)에

“임금이 즉위하신 지 3년 경자에 비로소 집현전을 두시고....또 남아 있는 문적과 새로 나 온 책들을 다 얻지 못한 것을 염려하시어 사신의 내왕 편에 중국에서 고루 구하고, 문신을 파견하시어 나라 안에서 널리 사들이니 이에 서적이 날마다 늘어나고 달마다 불어나서 장서각(藏書閣)을 세우고 목록을 작성해서 간직하니 서가가 차고 넘쳐 동국이 있은 이래로 문적이 많기가 오늘 날 처럼 성한 때가 없었다.”

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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