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뜻은 인재들을 길러 새로운 유교국가의 틀을 만들고, 정치를 해 나가는 도중에 생기는 현안문제들을 이들과 상의하여 해결할 심산으로 집현전을 두고 이곳에 전문인력을 배치하여 종신 토록 근무하도록 한 것인데 이러한 뜻을 몰라주고 집현전 관원들이 딴 마음을 품는데 대해서 서운하게 생각한 것이다. 집현전은 세종의 씽크 탱크(Think Tank)였다. 그러므로 세종대에는 집현전 관원이 다른 관청으로 옮겨가는 것을 되도록이면 억제했다. 때로는 이미 다른 관직으로 옮겨 간 사람도 다시 데려 오기도 했다. 그러나 세종이 죽은 뒤에는 이러한 내규도 무너지게 되었다. 집현전 관원들이 성장하여 정치에 직접 간여하게 된 것이다.
집현전 관원의 수는 1420년(세종 2)에 10명, 1422년(세종 4)에 15명, 1435년(세종 17) 초에 22명, 같은 해 7월에 32명, 1436년(세종 18) 윤 6월에 20명으로 바뀌었다. 1435년 7월에 집현전의 T/O가 10명 더 는 것은 서연관원(書筵官員)10명을 집현전에 합친 결과였다.
그러면 집현전은 어떠한 일을 맡은 기관인가?
“집현전은 ....서적을 많이 두고, 이틀마다 번(番)을 나누어 모여서 경적(經籍)을 강론하고, 고문(顧問)에 대비하는 가관이다.”
“오직 집현전에 남아서....문신 중에 재주와 행실이 있고 나이가 어린 자로 채워서 오로지 경사(經史) 강론하는 것을 일삼고, 고문(顧問)에 대비한다.”
집현전의 하는 일을 가장 간결하게 표현한 말들이다. 그리고 『경국대전』과 『홍문관지』에 홍문관의 하는 일을
“궁중의 경적(經籍)을 관장하고, 문한(文翰을 다스려 고문(顧問)에 대비한다.”
고 했다.
그런데
“옛날의 집현전은 즉 지금의 홍문관이다”
“홍문관은 즉 옛날의 집현전이다.”
“집현전에 의거해서 대신 홍문관을 설치했다.”
“집현전을 개칭하여 홍문관이라 했다.”
“지금 집현이라는 이름을 빌려 홍문이라 한 것은 어떤 이유가 있는가?”
라는 말들로 미루어 보아 집현전과 홍문관은 같은 일을 맡은 기관이었음을 알 수 있다.
- 2011/11/17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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