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유학의 흐름과 내포 6 └ 성고선생 칼럼

조익(1579-1655)은 1611년(광해군 3)에 조광조(趙光祖)‧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이언적(李彦廸)등 4현(四賢)을 문묘에 배향할 것을 주장하다가 좌천되고, 김육(金堉)이 대동법(大同法)을 실시 하는데 기여한 유명한 학자관료요 교육이론가였다. 저서로는 곤지록 (困知錄)‧ 역상개략 (曆象槪略)‧ 중용주해 (中庸註解)‧ 대학주해 (大學註解)‧ 서경천설 (書經淺說)등이 있으며 묘는 대흥(大興) 동화산(東華山) 아래(예산군 신양면 백석리)에 있다. 광주(廣州)의 명고서원(明皐書院), 개성(開城)의 숭양서원(崇陽書院), 신창(新昌)의 도산서원(道山書院)에 배행되었다. 예학(禮學)‧경학(經學)‧병법(兵法)‧복술(卜術)에 밝았으며, 장유(張維)‧최명길(崔鳴吉)‧이시백(李時白)과 함께 사우지정(四友之情)이라 할만큼 서로 친했다.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이안눌(1571-1637)은 덕수이씨(德水李氏)로 이행(李荇)의 증손이며, 이식(李植)의 종숙(從叔)이다. 권필(權弼)‧윤근수(尹根壽)‧이호민(李好民)등과 함께 동악시단(東岳詩壇)을 만들어 문명(文名)을 날렸으며 글씨도 잘 썼다. 정철(鄭澈)의 사미인곡(思美人曲)을 듣고 지은 문가(聞歌)가 특히 유명하다. 홍주목사(洪州牧使)‧담양부사(潭陽府使)와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을 지냈으며, 담양(潭陽)의 구산서원(舊山書院), 면천(沔川)의 향사(鄕祠)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문혜(文惠)이다. 저서로는 동악집 (東岳集) 26권이 있다. 묘소가 당진군 정미면 사관리에 있다.

조극선(1595-1658)은 한양조씨로 박지계(朴知誡)와 조익(趙翼)의 문인이며 성리학과 예설에 밝았다. 온양군수(溫陽郡守) 면천군수(沔川郡守)를 지냈으며 신창(新昌)의 도산서원(道山書院), 덕산(德山)의 회암서원(晦菴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야곡집 (冶谷集) 10권과 야곡삼관기 (冶谷三官記)가 있으며 시호는 문목(文穆)이다. 1600년경에 덕산에 입향하여 한양조씨 세거지를 마련하였으며, 묘비가 남아 있다.

남구만(南九萬, 1629~1711))은 숙종 때 오래 동안 영의정을 지낸 소론의 영수로, 결성(結成)에 우거(寓居)했다. 채제공(1720-1799)은 홍주(洪州)에서 출생해서 정조대에 10년 독상(獨相)을 지낼 정도로 유명한 남인의 영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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