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유학의 흐름과 내포 5 └ 성고선생 칼럼

이간은 온양의 외암서원(巍巖書院)에 배향되었다. 호락시비는 오랫동안 계속되어 귀결을 보지 못했으나, 처음에는 호론이 우세하다가 뒤에는 낙론이 우세하게 되었다.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주역들이 낙론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이 호락시비는 결국 정치적으로 송시열의 북벌론(北伐論)을 지지하느냐, 북학론(北學論)을 지지하느냐는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청나라를 오랑캐(禽獸)로 볼 것이냐, 선진국으로 볼 것이냐는 차이이다.

인물성동이론에 끼지 않은 유명한 학자 정치인도 많다. 이산해(李山海)‧박지계(朴知誡)‧김홍욱(金弘郁)‧권시(權諰)‧조익(趙翼)‧조헌(趙憲)‧이안눌(李安訥)‧조극선(趙克善)‧남구만(南九萬)‧채제공(蔡濟恭) 등이 그들이다.

이산해(1539-1609)는 한산이씨로 내자시정(內資寺正) 이지번(李之番)의 아들이며 화담의 제자인 이지함(李之函)에게서 배웠다. 그는 1558년(명종 13)에 진사, 1561년(명종 16)에 식년문과 병과에 급제하여 대북(大北)의 영수로서 이이첨(李爾瞻)‧정인홍(鄭仁弘)‧홍여순(洪汝諄)과 함께 북인정권을 이끌어갔으며 영의정을 지냈다. 어려서부터 총명했으며, 문장 8가(文章八家)의 한사람으로서 서화(書畵)에 뛰어나 조광조 묘비(趙光祖墓碑)와 이언적 묘비(李彦廸墓碑)를 썼다. 저서로는 아계집(鵝溪集)이 있으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에 묘소가 있다.

박지계(1573-1635)는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定遠君)을 원종(元宗)으로 추숭(追崇)하는데 앞장선 이론가이다. 인조초 김장생(金長生)․장현광(張顯光)과 함께 조정에 징소된 3대 산림(山林)이었으며, 예학에 뛰어난 학자였다. 아산(牙山)의 인산서원(仁山書院)에 배향되었으며 신창(新昌) 사람이다.

김홍욱(1602-1654)은 경주김씨로 정조대의 벽파(辟派)인 김구주(金龜柱)의 조상으로, 효종 때 소현세자(昭顯世子)의 부인 강빈(姜嬪)의 원통함을 논하였다가 죽임을 당했다. 후에 신원되어 서산의 성암서원(聖巖書院)에 배향되었으며 서산(瑞山) 사람이다. 서산시 대산읍 대로리에 그의 묘소가 있다.

권시(1604-1672)는 원래 서인이면서 기해예송(己亥禮訟)에서 남인인 허목(許穆)과 윤선도(尹善道)의 예론(禮論-三年說)을 지지한 이론가로서, 그의 후손들은 남인이 되었다. 원래 박지계의 문인으로 24세에 공주로 이주하기 전에는 태안에서 살았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