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유학의 흐름과 내포 3 └ 성고선생 칼럼

남당 한원진(1682-1751)은 세종 때의 영의정 한상경(韓尙敬)의 후손으로 우암 송시열의 수제자인 수암 권상하의 제자이다. 그는 이이(李珥)의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바탕으로 인물성동이론 논쟁에서는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이 다르다는 인물성이론을 주장했다. 그의 심성설(心性說)은 우주만물의 생성구조에 토대를 두고 있다. 우주에는 양건(陽健)한 기(氣)로서 남성적인 것이 되고, 음순(陰順)한 기(氣)로서 여성적인 것이 되는 기화(氣化)의 단계, 음양(陰陽)의 기(氣)가 모여 만물의 형체를 이루는 형화(形化)의 단계가 존재하며, 형화를 통해 형성된 형체의 내부에도 기화(氣化)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처럼 만물의 생성을 기화, 형화, 형화속의 기화의 3층의 구조로 파악하여 성삼층설(性三層說)을 주장했다. 그는 이 성삼층설에 입각하여 성(性)을 인간과 사물이 같은 초형기(超形氣)의 성, 인간과 사물이 다른 인기질(因氣質)의 성, 인간과 인간이 서로 다른 잡기질(雜氣質)의 성 등으로 구분했다. 또한 성(性)은 이(理)가 기질(氣質) 속에 내재된 뒤 운위될 수 있는 개념이라는 율곡의 생각을 계승하여, 인성과 물성은 기질을 관련시키게 되는 인기질(因氣質)의 차원에서 비교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은 생각으로 그는 인성과 물성이 서로 다르다고 주장했다. 미발심체(未發心體) 논쟁에서도 그는 미말(未發)의 심체(心體)를 본래부터 선(善)하다는 이간(李東)의 주장과는 달리 미발한 심체에도 선악(善惡)의 가능성이 공재(共在)한다는 미발심체 유선악설(未發心體 有善惡說)을 주장했다.

한원진은 충청도 결성(현재의 홍성군 결성면 남당리)에 살았기 때문에 이를 호론(湖論) 또는 호학(湖學)이라 한다. 저서로는 역학문답(易學問答) ․ 역학계몽(易學啓蒙) ․ 거관록(居官錄) ․ 문왕역석의(文王易釋義) ․ 주자언론동이고(朱子言論同異故) ․ 남당집 (南塘集)․38권,․ 임시취고 (臨時取考)․ 경의기문록(經義記問錄) ․ 퇴계집소석(退溪集疏釋) ․ 의례경전통해보(儀禮經傳通解補) ․ 장자변해(莊子辨解) ․ 선학통변(禪學通辯) ․ 왕양명집변(王陽明集辨) ․ 심경부주차기(心經附註箚記) ․ 춘추별전(春秋別傳) ․ 근사록주설(近思錄註說) ․ 이락연원록(伊洛淵源錄) ․ 가례소의의록(家禮疏擬疑錄) ․ 가례원류의록(家禮源流疑錄) ․ 고사편람(古事便覽) 등이 있다.

이중 경의기문록 과 주자언론동이고 를 제외한 저서는 김천 직지사(直指寺)에 판본이 보관되어 있었으나, 퇴계학설에 위배된다 하여 어사(御史) 김정희(金正喜)의 방화로 없어졌다. 1741년(영조 17)에 마친 주자언록동이고 는 우암 송시열이 시작하여 그의 스승인 수암 권상하를 거쳐 50년만에 완성한 거작이다. 율곡 이이가 기(氣)는 발(發)해도 이(理)는 발(發)하지 않는다 했으나, 주자가 사단(四端)은 이지발(理之發)이요 칠정(七情)은 기지발(氣之發)이라 한 말과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 말이 주자의 말이 아니고 제자들이 삽입한 것이라는 것을 주자의 모든 저작을 통하여 증명하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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