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본 수정 내용 비교 연구의 문제점 5 └ 역사일반

더욱이 박창화가 『花郞世紀』를 필사했다면 그렇게 대놓고 작업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일본 궁내부의 특성상, 소장 자료가 개인적인 관심만으로 필사되어 돌아다니는 사태를 좋아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고위층의 특별한 판단으로 일본 궁내부가 『花郞世紀』에 대하여 기관 차원의 필사를 추진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따라서 그러한 사실이 밝혀지지 않는 한, 필사는 순전히 박창화의 개인적인 작업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박창화는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작업을 해야 했다. 이렇게 근무 중에 시간을 내어 몰래 진행해야 하는 작업상황이 좋았을 리가 없다.

열악한 상황에서 눈치를 보며 작업을 하다보면 실수나 착각이 나올 가능성을 매우 커진다. 그러니 오류가 많이 나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따지고 보면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굳이 있을 수 없는 일로 몰아버려 놓고 근거로 삼는 행위가 오히려 문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발췌본에서 화랑도의 성격이나 조직 등 중요한 내용을 생략했다거나 풍월주들의 동성애·사통 기사등 교육상 생략해야 할 내용을 수록하는 등, 발췌목적이 애매하다는 지적도 근거가 될 지 의문이다. 김기흥은 이를 두고 ‘완본을 향한 중간본의 미숙함’이라는 언급까지 했다.

그렇지만 특별히 밝혀 놓은 기록이 없는 한, 발췌 의도는 자신만이 아는 일이다. 제3자의 입장에서는 박창화의 발췌의도에 대하여 짐작하는 것 이상을 할 수가 없다. 또 발췌나 요약을 하다 보면 그때그때 관심 가는 내용 위주로 선택을 하게 된다. 그런 선택을 하는 와중에 일관성이나 합리성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발췌본을 어떤 의도로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박창화 자신이 그렇게 큰 부담을 가지고 만들어야 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미숙한 부분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런데도 이를 굳이 ‘완본을 향한 중간본의 미숙함’으로 몰아가야 했을 지 의문이다. 발췌본을 박창화의 창작으로 추정하고, 『花郞世紀』 필사본에 ‘『花郞世紀』연의’라는 이름까지 붙여 놓았던 근거가 이런 수준의 논증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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