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포지방의 지성사 └ 성고선생 칼럼

내포는 가야산을 중심으로 하는 넓은 개펄과 평야가 발달하여 경제적 여건이 좋고 서울과 가까우며 중국과 내통하여 일찍부터 선진지역으로서 지식인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

그리하여 고려말의 성리학 수용에 앞장섰고 조선후기에 실학자들을 많이 배출했으며 천주교가 널리 유포되기도 했다. 또한 근대화 과정에서도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내포지방의 학문활동과 정치활동을 집중적으로 검토해 보고자 한다. 이들의 활동이 개인의 사상을 발전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2. 내포의 자연환경

내포(內浦)는 “안 개”라고도 하는데 “바다나 호수가 육지로 파고든 후미진 부분”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는 가야산(伽倻山)을 중심으로 하는 충청도의 서북지역을 지칭한다. 이중환(李重煥)의

택리지(擇里志) 팔도총론(八道總論)에서는 내포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충청도에서는 내포가 가장 좋다. 공주에서 서북쪽으로 200리쯤에 가야산(伽倻山)이 있다. 서쪽은 큰 바다이고 북쪽은 경기의 바닷가 고을과 큰 못(大澤)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으니, 곧 서해(西海)가 쑥 들어온 곳(斗入處)이다. 동쪽은 큰 들판(大野)이고, 들 가운데에는 또 큰 개(大浦) 하나가 있으니 이름이 유궁진(由宮津)으로, 밀물이 들어오지 않으면 배를 이용할 수 없다. 남쪽으로 오서산에 맊혀 있는데 가야산으로부터 온 맥으로, 단지 동남쪽으로 공주(公州)와 통한다. 가야산의 앞뒤에 있는 10고을을 함께 내포라 한다. 지세(地勢)가 한 모퉁이에 멀리 떨어져 있고 또 큰 길목이 아니므로 임진(壬辰)과 병자(丙子)의 두 차례 난리에도 여기에는 미치지 않았다. 땅이 기름지고 평평하다. 또 생선과 소금이 매우 흔하므로 부자가 많고 여러 대를 이어 사는 사대부(士大夫) 집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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