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세기 필사본이 위작되었다고 내세운 증거 조작 하나 1 └ 역사일반

나중에 기회를 봐서 자세한 글을 포스팅하겠지만, 대표적이고 황당한 증거 조작 하나만 소개해보자. 화랑세기 필사본이 조작되었다는 점이 밝혀졌는데도 고집부린다며 펄펄 뛴 사람이 제일 확실한 증거라고 내놓은 것도 이것이다.

박창화가 필사본을 일본 궁내성에 있는 원본을 보고 만들었다는데, 우리 허영란 선생이 가서 목록 뒤져봤는데 없다더라. 이번에 그 내용이 논문으로 나왔더라‘는 거였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정말 일본 궁내성에 원본 없는 게 증명된 줄 알만한 얘기다.

하지만 화랑세기 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더라도 이게 사기극이라는 점은 금방 알아볼 수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주변에 고문서 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 속사정을 알고 있었으니까. 모르는 사람들은 보통 공개된 ‘목록’에 그 기관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자료가 다 있는 줄 안다. 하지만 ‘목록’이라는 개념 자체가 근대적 산물이라 그 이후 자료들은 그 체계에 맞춰 정리해놓는 경향이 있지만, 그런 체계에 맞지 않는 고문서들은 정리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정리 순위에서 밀리다보면 안 나오기 십상이다.

더욱이 일본 궁내성은 가지고 있는 자료 잘 정리해서 대중들에게 선보이라고 만든 기관이 아니다. 여기는 쉽게 말해서 천황가의 보물과 자료들을 잘 보관하는게 주목적이라 훼손을 우려해서 공개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특히 화랑세기 같은 중요문서는 있는지 없는지 확인조차 해주려하지 않는다.

그러니 공개된 목록에 나올 리가 없다. 그런데도 국편 직원 한 사람이 가서 공개된 목록 한번 훓어본 것 가지고 ‘화랑세기 원본 없는 게 확인되었다’고 오해하도록 논문을 써버린 것이다. 이 수법은 에구구가 ‘화랑세기 진위논쟁에 정답을 단언할 공력이 없다’는 말을 ‘그런 주제에 관련 글을 썼다’는 쪽을 몰아간 행각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는 별 의미없는 것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도록 부풀려간 과정도 알아두면 재미있을 것이다. 먼저 일본에 가서 공개목록을 보았다는 점을 먼저 논문에 쓴 울산대 허영란교수부터 문제였다. 당사자가 쓴 글을 보면 자신이 조사했다는 게 화랑세기 진위논쟁에 무슨 단서가 될만한 게 아니라는 점은 밝혀놓았다. 단지 이해하기 어렵게 우회적으로 써놔서 오해하기 딱 좋게 써놓은 것 뿐이다.

내막은 이렇다. 허영란 교수의 논문은 대부분의 내용이 서릉부에 대한 소개와 한국계 자료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소장되었는지, 서릉원 자료를 어떻게 열람하는지를 소개하는 데에 치중하고 있다.

당연히 이 내용 대부분이 花郞世紀 원본의 존재 여부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결국 허영란 교수의 글은 花郞世紀 원본의 존재여부를 확인하는데 있어서는 애초부터 별 기대를 가질 수조차 없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점에 대해서는 허영란 자신도 인식하고 있었으며 우회적으로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스스로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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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ㅋㅋ 2011/09/29 16:40 # 삭제 답글

    포르노 소설을 역사서라고 하니 ㅠ.ㅠ
    아랫글 펌...

    ----
    남당의 유고 중 화랑세기를 구입해서 읽어 보았습니다. 저는 느낌이 남당이 혹시 일제의 첩자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 역사 특히 왕실계보와 위정자들을 모두 일본보다 더 음란하고 무도한 자들로 매도시킨다고 보았습니다.

    단군할아버지의 팔조 법금만 하더라도 우리민족의 도덕관은 중국을 능가합니다. 그러나 남당의 유고는 거의 대부분 요즘 야설과 거의 동일한 음란물에 속합니다. 이것은 일본재단과 일본 극우집단의 사주를 받아 계획적이고 노골적인 배달민족 비하가 아닌가 분개합니다. 남당의 유고는 강단사학에서 하는 방법처럼 엄밀한 사료비판이 있은 연후에 연구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먼저 남당의 인간역정 그리고 그의 사상등을 먼저 연구가 선행되어야 그의 실체가 드러난다고 봅니다. 저는 화랑세기를 보고 너문 분개한 사람중의 한사람입니다. 산천을 돌아다니며 변태섹스를 즐긴 자들로 묘사됨에 일제의 사주가 아니면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중에 한명입니다.
  • 천랑성주 2011/09/30 08:22 # 답글

    ㅋㅋ/ 그 당시의 성모럴을 현대의 성모럴로 평가하고자 하는 당신이 더 이상하오...고대 그리스에서 성인 남자와 소년이 사제와 동시에 동성연인이 되는 풍습이 있었소. 그러면 현대의 그리스인들은 우리 선조들을 부정하게 묘사했다고 난리피워야 합니까?
  • 객관적진리추구 2011/09/30 09:26 #

    그 말 하나는 맞는 말 같소 동감하오
  • dyanos 2011/09/30 14:33 # 삭제 답글

    그럼 박창화님이 공개목록에도 없는 화랑세기를 어떻게 거기에 있는지 알고 배껴올수있었던건가요?

    만약 당시에 (필사본을 제작할 당시) 공개목록에 있었다고 한다면(그래서 필사본을 만들었다면), 왜 지금은 사라졌을까요? 만약 목록에서 사라진것이라면, 화랑세기가 일본의 역사에서 어떤점에서 드러내기가 싫었던걸까요?

    분량이 꽤 된다면, 필사본을 제작하는 시간도 꽤 될텐데, 그것을 그렇게 오랜시간 필사할 수 있도록 궁내성에서 허가를 해준걸까요? 아님 ...

    만약 필사본이 진짜라면 위의 사실들에 대해서 꽤나 궁금해지는군요...(만약 알수없었다라고 하시다면, 의심이 생길수밖에 없는 노릇아닐까요??)
  • 시민2 2018/01/11 14:22 # 삭제 답글

    남당이 생전에 화랑세기는 당신들이 아는 그런 책이 아니라고 하였다는 증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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