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계백 - 조금 무리한 듯 └ 잡글

제작과정에서부터 방송사 차원의 무리가 있었다는 말은 들었는데, 이게 점점 스토리 진행에도 악영향을 주는 것 같다. 눈길 끄는 스토리 만들어내기 위해 무리한 설정을 하는 쪽으로 흐를 수 있는 점 주의해야 할 텐데...

먼저 태자로 책봉된 의자가 신라에 사신으로 가는 설정. 여러 가지 의도가 있었다고 했지만, 겉으로라도 평화 동맹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면 꽤 비중 큰 교섭이었을 텐데. 그런데 그때 변방으로 파견된 계백은 신라 국경에서 공격을 시도한다. 계백이 유능한 장수였음을 부각시키려는 장면인 건 알겠는데.

그래도 태자가 적 수도에 사신으로 가는 상황이다. 이 정도면 거의 정상회담 수준의 교섭인데, 이런 일이 잇으면 보통 양국이 자신의 군대에 충돌을 자제하라는 명령 정도는 내려가는게 보통 아닐까? 특히 백제쪽에는. 사소한 국경 충돌이라도 큰 전쟁으로 번지기 쉬운데다가, 당시는 지금보다도 이걸 막을 장치가 적었을텐데.

태자가 적 수도에 사신으로 간 백제에게 더 곤란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최전선에 배치된 의자의 사람 계백이 태자의 사정도 모르고 신라의 성을 공격한다? 좀 생각해봐야 할 설정인 것 같다. 어떻게든 시청자가 관심가지는 의자왕과 계백이 김유신 김춘추와 대면하는 장면을 넣으려고 설정했다는 말은 들었는데.  

그리고 계백을 ‘명장일 뿐 아니라 백성까지 생각한 인물’로 만들어가는 건 좋은데. 이걸 부각시키려고 백제 지방호족이 제멋대로 사병 풀어 지역의 군 책임자를 잡아넣을 수 있는 걸로 설정하면 백제라는 나라가 너무 콩가루가 되지 않을지.

사실 그 근원은 따지자면 깊다. 드라마 테마 중 하나가 기득권층에 휘둘리던 백제가 의자왕을 중심으로 자리를 잡아 나아가려는 과정이다. 문제는 기득권층의 횡포를 강조하다보니 백제 역사상 내세울만한 업적을 이루었던 몇 안되는 왕 중의 하나인 무왕을 ‘실권 없이 정치적으로 생존하기에만 급급했던 왕’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시청자들이 거부감을 갖는 부분인 것 같던데. 구도를 보면 의자왕도 곧 그런 인물로 나아갈 것 같다.

그리고 선덕여왕의 등극과 모란꽃 문제. 이게 원래는 앞의 진평왕 시절에 일어났던 걸 살짝 시기를 옮겨 써먹었다는 점, 드라마에서 흔히 쓰는 수법이다. 이걸 재 해석해 선덕여왕의 정치공작으로 둔갑시킨 것까지도 뭐 드라마니까.

그런데 아무리 혈연적으로 이모-조카 사이로 설정했다 하더라도 의자는 잠재적인 적 백제의 태자다. 신라에 사신으로 보내달라면서 자기입으로 장차 신라를 칠 때 도움이 되도록 염탐하는 의미도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 사람에게 선덕여왕이 자신의 정치적 속셈을 파악할 기회를 주고, 더 나아가 속셈을 알아보아야 만나주겠다니.

적국 태자가 신라의 내부 갈등을 파악하는게 신라에 유리한 일이었을까? 등장인물의 두뇌싸움을 빌미로 케릭터를 돋보이게 하는 건 좋지만 너무 무리하다가 역효과나는 사태도 조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