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선택과 역사해석 └전쟁사

말돌리기가 甲이십니다.

어제 포스팅에서는 백제가 전략요충인 백강을 막지 않았다고 거짓말했던 삼국사기의 사료적 문제를 주로 얘기했다. 이는 황산벌전투나 백제멸망의 원인을 찾는데 서로 상충되는 사료들 사이에서 어느 쪽을 믿을 것인가라는 점이 근본적인 문제인 것이지, 누구 말처럼 사료를 폭넓게 보는 게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또한 무엇 때문에 백제가 내부분열로 우왕좌왕하며 대처하지 못한 것처럼 써놓은 삼국사기 등의 기록을 액면 그대로 믿어주지 못하느냐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술이부작을 강조하는 삼국사기까지 이렇게 노골적인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료비판 없이 껍데기만 읽어내는 역사해석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즉 사료를 읽으면서 보통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편찬자들이 믿어주기를 바라는 내용을 액면그대로 역사적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가 되겠다. 그래서 역사적 진실은 행간에 숨겨져 있다는 말이 나온다.

그래서 ‘성충,흥수의 말을 듣지 않고 백강을 막지 않았다’는 서술과 관련된 내용이 아니라 이와 상반되는 내용에 초점을 맞추어서 해석해야 한다는 점을 얘기하는데만 해도 이렇게 길어진다. 그런데 이렇게 놓고 보면 여러 가지 상황이 다르게 보인다. 왜곡된 맥락을 따라다보면 백제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벌어지는 전투마다 참패한 것처럼 묘사되어 있는 것도 의심해 볼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니 병력을 합쳤다는 내용과 상반되는 기록인 ‘황산벌의 백제군이 전멸했다’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는 후자를 무조건적으로 믿으면서 모든 사실을 여기에 끼워 맞춘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여기서 신뢰성이 바뀌면 당연히 해석도 바뀐다.

일단 전과에 과장이 있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음은 물론이고 백제쪽에서도 병력을 보존하며 세 번의 전투를 치를 만큼 체계적으로 움직였다는 점도 알 수 있다. 백제가 체계적으로 움직였다고 보면 야스페르츠가 전제해놓은 조건이 바뀐다.

백제군은 전멸하지 않았고, 일부 부대는 퇴각했다. 물론 전부는 아니다. 전투를 벌이다 뒤돌아 뛰게 되면 그 부대는 오히려 전멸한다. 그래서 일부 부대가 후위전투를 해주어야 한다. 그 부대는 전멸하거나 포로가 되기 십상이다. 계백의 전사와 충상, 상영이 잡힌 것은 이런 상황만 묘사한 것일 수 있다. 그 사이에 나머지 부대는 퇴각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백강 입구까지 갔느냐고? 이동 방법만 간단히 언급해놓도록 한다. 30-40Km이의 거리가 도보로 이동하기에는 멀지만, 미리 준비시켜놓은 배로 금강 물길을 이용하면 상류에서 하류로 가는데 상당한 시간이 절약될 수 있다. 또 서영교 교수가 좋아하는 수법처럼 기병이 경무장 보병을 사이드카처럼 태우고 가는 방법도 있다. 어떤 방법을 썼건 백강하구까지 빠르게 이동할 방법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만 일단....

야스페르츠의 주장은 백제군이 참패했다는 구절을 찰떡같이 믿으며, 이를 전제로 지리멸렬 패주했을 황산벌의 백제군이 백강으로 이동할 수 없었다고 하는 게 골자다. 게다가 쓸데없이 웅진성을 거쳐갔다는 전제까지 붙여놓았다. 반어를 빙자해서, 백제군이 도성에 들러 점심 먹고 백강에 투입되었다는 식으로 있지도 않은 사실 만들어내 어떻게든 안되는 방향으로 몰자는 논리의 수준에서 벗어나는 내용은 아니다.

좀 더 자세한 사정을 보여드리려면 이 과정에서 설명해야 할 부분이 많다. 포스팅 중간에 시비가 걸리는 바람에 중간중간 설명해야 할 부분이 제대로 되지 못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급한 시비만 해결하면 나머지도 올릴 생각이다.

물론 몇 년전에 정리된 내용만으로 부족할 것 같다. 그리하여 새로 보충한 부분이 있는데, 이 내용은 이달 말 경에나 출간된 책의 일부라 모두 소개하기는 곤란한 상황이다. 그래도 사정이 허락하는대로 일부나마 포스팅할 생각이다. 시비를 건 쪽에서야 자세한 얘기는 별 관심이 없을테니, 진짜 관심있는 분만 새로 나올 책에 보충된 내용을 보시기 바란다.

그리고 오늘도 길어지니 문장에 대한 시비는 다음번에 한다. 젊잖게 질문을 하는 척 하더니, 이 문제에서도 빨리 답을 안주니 할 말 없는 것이라고 몰아가는 심보를 금방 드러낸다. 그렇다고 이런 대답 빨리 주려 진짜 중요한 일 파난 낼 생각은 없다.


덧글

  • 칠전팔기 2011/08/06 08:33 # 답글

    이쯤되면 말돌리기가 갑이 아니라 중언부언이 갑이라고 해야겠네요. 뭘 길게 써 놓으시기는 했는데 중요한 내용은 하나도 없고, 전에는 바빠서 길게 못 쓰신다더니 이번에는 자세한 걸 알고싶으면 책을 사라는 이야기시군요.^^;;
  • 플로리안 2011/08/06 13:02 # 삭제 답글

    그냥 상대를 안하시는 것이 좋으실텐데 말입니다.
  • ㄱㄳ 2011/08/06 13:12 # 삭제

    그냥 상대를 안하시는 것이 좋으실텐데 말입니다.(2)
  • cvfrtr 2011/08/06 13:26 # 삭제

    그냥 상대를 안하시는 것이 좋으실텐데 말입니다.(3)
  • 푸른하늘 2011/08/06 13:38 #

    그냥 상대를 안하시는 것이 좋으실텐데 말입니다.(4)
  • 리얼스나이퍼 2011/08/06 13:42 #

    그냥 상대를 안하시는 것이 좋으실텐데 말입니다.(5)
  • 아스트랄 2011/08/06 13:45 # 삭제

    그냥 상대를 안하시는 것이 좋으실텐데 말입니다.(6)
  • 댄디보이 2011/08/06 14:30 # 삭제

    그냥 상대를 안하시는 것이 좋으실텐데 말입니다.(7)
  • 슈피리어 2011/08/06 17:28 # 삭제

    그냥 상대를 안하시는 것이 좋으실텐데 말입니다.(8)
  • 객관적진리추구 2011/08/06 17:51 #

    이렇게 님들께서 도배하는 것도 블레이드님께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으실겁니다.
  • ㄱㄳ 2011/08/06 13:28 # 삭제 답글

    지켜보는 우리도 지치는데 정말 수고하십니다, 대단하십니다. 이말씀밖에는 드릴 수가 없네요ㅡ.ㅡ
  • 안시성 2011/08/06 16:17 # 삭제 답글

    안시성 토성 높이 100m,토성건설 실인원 50만명,당군80만~100만명 근거,


    1)안시성 토성 높이:100m 가능성 높음,
    2)안시성 토성 건설 인원:연인원 50만명일수 있지만 실인원 50만명일수 있슴,
    3)당나라군대 80만~100만명 가능성 높음,
    -----------------------------------------
    안시성 안에 10만명 고구려군 주둔,호수 존재,

    당나라 군대 연인원 100만명 동원(실인원일수 있슴),
    당나라군대 이적:6만명 보병,기병,
    당태종 친정군:20만명 보병,기병,
    수군:4만3000명,


    당나라군대가 60일간 50만명을 동원해 안시성 동남쪽 모퉁이에 토성 건설,
    안시성 안에서도 성을 높이 쌓아 대응,
    당나라 군대는 그때문에 토성 높이를 더 높게함,
    그러다가 당의 토성이 붕괴되어 안시성 성벽일부를 붕괴 시킴,
    당군이 쳐들어 가려는데 수백명의 고구려 병사가 토성 꼭대기 점령,
    당군 퇴치,

    이후 당군 도주,
    (타지역 고구려군의 기습에 의해 당군중 50~90% 이상이 사망한것으로 추정됨),
    당태종은 도망치면서 안시성 성주에게 비단100필 선물,
    -역사스페셜에 나온 안시성 사진 참조,


    토성을 쌓을때 고구려군의 화살,공성병기 공격으로부터 안전한 지점에 토성 쌓음,
    그러므로 안시성으로부터 100m떨어진 지점이 당군 토성건설 지점임,
    안시성 동남쪽 모퉁이라고 했으니 그 지점에 거대한 산이 있다면 그 산이 토성일 가능성 높음
    (진시황릉을 보고 후손들이 산으로 착각한일 참조),

    1)당군 토성 높이 100m이상:
    당군의 토성이 붕괴되면서 100m떨어진 안시성을 붕괴 시킨것을 봤을때
    60일만에 완성된 당군 토성의 높이는 100m이상임,
    토성 높이가 최소 100m는 되어야 100m떨어진 안시성을 덮칠수 있기 때문임,
    토성 높이가 40m이면 안시성 덮치는게 불가능함,
    (고구려성 25m인점 감안)


    2)당군 토성 꼭대기 면적 직경 20m이상:
    공성병기를 토성 꼭대기에 올려야 하기 때문에 최소 직경 20m 이상임,
    꼭대기 가장자리는 붕괴되기 쉽기 때문에
    실제 필요면적보다 1.5배 이상 넓어야함,


    3)당군 토성 무게 200만톤 이상:
    꼭대기 면적 직경 20m이상
    +토성 높이 100m이상
    +토성 밑면적 세로 200m,가로 길이 100m 이상으로 추정,

    50m x 200m x 100m=100만 입방미터,
    1입방미터 흙 무게:2톤 이상,
    그러므로 당군토성의 무게는 200만톤정도이다,
  • 안시성 2011/08/06 16:18 # 삭제 답글

    -------------------------------------------
    4)당군 토성 건설 인원숫자:
    200만톤 흙/60일=3만3400톤정도/1일,


    -1일 작업시간:아침,점식식사 2시간을 제외한 10시간,
    -흙운반 왕복시간:30분~1시간,
    *왕복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
    지표면의 흙은 부드러워 파기 쉽지만,
    일정 깊이의 흙은 단단해서 파기 어렵다,
    그러므로 당나라 병사들은 파기 쉬운 흙만 채취하기 쉽다,
    그때문에 당나라 병사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땅을 파 흙을 채취했기 때문에
    안시성 근처에 거대한 구덩이가 발견되지 않기 쉽다,
    사방으로 흩어져 흙을 팠기 때문에 흙 운반 왕복 시간은 30분~1시간정도 걸린다,

    -흙채취,운반 병사들을 지킬 병사숫자도 필요하다,토성건설 병사도 필요하다,
    -병사1인 흙운반 능력:1인 20~80kg,평균적으로 50kg(병사 나이15~55세이기 때문),
    1일 작업시간 10시간/흙운반 왕복시간 30분~1시간=10~50회(평균적으로 30회),


    병사1인 평균적 흙운반 무게 50kg x 평균적 흙운반 왕복횟수 30회=1.5톤 흙,


    1일 3만3400톤정도 흙 운반해 토성 건설함,
    그러므로 3만3400톤 흙/병사1인 1.5톤 흙 운반능력=2만2267명 흙운반 병사 필요,
    -흙운반 병사 1일 2만2267명 필요,


    -흙 채취 및 푸대에 담는 병사:
    병사 1인이 9초에 2kg흙 채취 및 푸대에 담기 가능(중간에 쉬는 시간 포함)
    그러므로 1일 작업시간 10시간/9초 x2kg=8톤 흙(중간에 쉬는 시간 포함)
    3만3400톤 흙/8톤 흙=1일 4175명정도 필요,
    당나라 병사가 삽을 1만개 이상 가져오기 힘든점 감안,


    -토성 건설 병사:1일 4175명정도면 충분,


    흙 채취 및 푸대에 담는 병사 1일 4175명정도
    +흙운반 왕복 병사 1일 2만2267명정도,
    +토성 건설병사 1일 4175명정도,
    =1일 3만617명 병사가 있어야함,


    1일 3만617명 x 60일=183만7020명 필요,


    쉽게 말해서
    당군이 토성 건설할때 183만7020명 필요함,
    그런데 실제 당군 숫자는 100만명 이하임,
    그러므로 183만7020명이 연인원이 됩니다,


    그런데 역사기록에는 당군의 토성건설 인원이 50만명이라고 되있습니다,
    뭔가 이상하죠?


    순차교대 방식으로 실인원 50만명이 동원된게 아닐까요?
    피라미드를 건설할때 20만명이 동원 되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5만명만 있어도 피라미드를 건설할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5만명만 동원해 매일 피라미드 건설을 시키면?
    뼈골이 빠져 작업효율저하,작업속도 저하,사상자 발생율 증가,
    여러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집트 왕조는
    1팀 5만명,2팀 5만명,3팀 5만명,4팀 5만명,이런식으로 5만명씩 여러 팀을 만들어
    1팀이 일정기간(몇주?) 일시키고 휴식 시키고,
    다음 2팀이 일정기간(몇주?) 일시키고 휴식 시키고,
    이런식으로 순차교대방식으로 피라미드를 건설 시켰다고 합니다,

    이런 방식이 안시성 밖의 당군 토성에 적용되었다면?

    1팀 3만617명 병사,2팀 3만617명 병사,3팀 3만617명 병사,
    4팀 3만617명 병사,5팀 3만617명 병사,,,,,16팀까지 만들어 놓고,

    1팀당 3.75일씩 일하면 60일째 실인원 50만명 동원 토성건설이란 기록이 나올수 있습니다,
    안시성 토성 건설50만명은 연인원일수 있지만,실인원일수 있슴,


    50만명을 하루에 동원해서 건설한건 100% 아닙니다,
    그러나 순차교대방식으로 실인원 50만명은 가능합니다,
    ----------------------------------------------------
    5)당나라 군 80만~100만명 가능성 높음:


    -안시성전투 당시 고구려,당나라 군인숫자:
    안시성 안에 10만명 고구려군 주둔,호수 존재,

    당나라 군대 연인원 100만명 동원(실인원일수 있슴),
    당나라군대 이적:6만명 보병,기병,
    당태종 친정군:20만명 보병,기병,
    수군:4만3000명,

    당나라 군대 실인원이 30만3000명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예로부터 병법에는 성을 함락 시키려면 최소 5배 이상의 병력을 동원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구려 성들은 천혜의 성들이 많아
    당나라 군대가 고구려를 정복하려면 최소 50만명 이상이 동원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50만명만 동원해서는 고구려를 정복하는게 불가능합니다,
    안시성의 10만 고구려군과 싸우다가 50만 당군중에 최소 20만 이상 사망하기 쉽고
    이후 평양성을 공격할때 남은 30만중에 20만 이상이 사망하기 쉬워서
    결국 10만명정도 남기 쉬운데,
    10만명가지고 드넓은 고구려를 지배한다?
    현실적으로 이건 불가능합니다,
    (천혜의 고구려성을 함락 시키려면 엄청난 병력손실이 발생하는점 감안)


    그러므로 당나라 군대 숫자는 최소 80만명~100만명정도로 추정됩니다,
    당태종은 현명합니다,고구려를 정복할때 수십만이 사망할것을 알고 있죠,
    전쟁중 당군 손실률을 감안해서 최대 병력을 동원했을텐데,
    실인원 30만3000명으로는 고구려 정복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당태종 군대 숫자가 연인원 100만이란건 말도 안되는 축소 역사이고,
    실인원이 80만~100만명으로 예상됩니다.


    안시성 이전의 고구려성들은 쉽게 함락 되었는데
    그게 고구려군의 작전상 후퇴라고 하는 학자의 주장이 있습니다.
    함락한 고구려 성을 지키는데는 성 하나당 1000명이면 충분합니다.
    1000명이면 적이 쳐들어와도 아군이 몰려올때까지 지키기 쉽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함락된 고구려성이 10개라고 가정할경우
    당군중에 1만명만 고구려성을 지키고
    나머지 모든 당군이 안시성 공략을 위해 집결했을것이라 생각 됩니다.

    안시성 안에 10만 고구려군이 있었기 때문에
    안시성 보다 넓은 면적의 안시성 밖에 당군 80만~100만이 주둔 가능합니다
  • 안시성 2011/08/06 16:31 # 삭제 답글

    블레이드님! 실인원50만명 순차식 토성건설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블레이드님께서 안시성 토성건설설에 대해 책이나 학술논문으로 다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역사학의 초보자가


    당군100만명이 가능한 근거:
    고대의 역사책들을 보면 마을의 남자들이 모두 끌려가서
    애들과 여자,노인만 남았다는 내용들이 부지기수로 많이 나온다.

    당나라 국민의 숫자가 몇명인지 모르지만 최수 고구려보다는 10배는 넘는다.
    그런데 고구려 안시성의 고구려군 숫자가 10만명정도

    즉 당나라 병사가 고구려의 10배인 100만이 될수 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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