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표현에 치우치는 대하드라마 └ 잡글

우선 왕족 앞에서 함부로 칼 뽑는 버릇은 왜 못 고치는지 모르겠다. 작가들은 등장인물들의 감정표현에만 신경을 쓰니까 왕족 앞에서 칼 뽑는 장면을 쉽게 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명색이 공영방송 대하드라마인데, 시대상황 헛갈리게 하는 장면 너무 고집스럽게 넣는 것 좀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왕족의 위상을 민주주의 시대와 헛갈리니까, 그 앞에서 제멋대로 행동하는 장면이 자꾸 나오게 된다. 왕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말대답 하는 게 건방지다고 제멋대로 말갈족 포로 죽인다고 설친다? 왕자 체면 어떻게 되라고?

그렇게 시대상황 신경 쓰지 않으니까 노비에 비적 출신들이 오자마자 고구려 장수들과 마주 앉아 전략을 의논하는 장면을 연출하는 것 같다. 시대가 그런 시대가 아닌데....

아무리 왕자 목숨을 살려주었다지만, 그건 왕자의 직접 명을 따르는 수하들로 있는 걸로 충분하다. 그것을 넘어서 계급과 신분을 뛰어넘어 왕자와 같이 중요한 전쟁의 전략을 짜는 자리에 낀다는 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황회가 비적과 노예 출신들 끌고 야습 나서는 장면도 부자연스럽다. 일부러 소리 내라고 북에 방울까지 나누어 주었는데, 이걸 왜 나누어주었는지 설명도 안 해준 걸로 설정했다. 그러다 보니 따라오던 자들이 ‘우리 팔아먹으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며 대드는 장면도 나왔다.

이렇게 서로 믿지 못하는데 무슨 작전을 편다는 것인지. 위험한 작전에 나가는 부대는 일사불란한 통솔이 필수다. 그러자면 명령계통은 확실히 서야 하는데, 이렇게 서로 야자 트는 콩가루들을 위험한 전장에 내보내가지고 뭐가 될는지.

드라마니까 그렇게 기강이 엉망인 부대가 갑자기 철들어서, 황회가 적이 나타났다고 혼자서 떠들기 시작하니 멱살까지 잡다가도 대드는 것 멈추고 따라주는 거지 실전에서 그랫으면 다 도망가고 난리났을 것이다. 말갈족도 그렇다. 얼굴도 보이지 않는 고구려군이 제멋대로 자기들을 ‘내부의 반역자’로 간주하고 떠드는 소리를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도 너무 순진해 보인다. 그야말로 ‘드라마니까’라는 점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마지막 장면까지 드라마적 감동에 집착하는 것도 좀 그렇다. 그렇게 치열한 전투를 벌여 잡힌 말갈 포로들을 아무 조건 없이 풀어주었다. 의도는 보인다. 그렇게 아량을 보여 마음을 얻는다는 설정일 것이다.

너무 리얼리티가 없어 보인다는 무시하는 것 같다. 아무리 은혜를 베풀어 목숨을 살려주더라도 풀려난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택할 수 있는 길은 별로 없다. 자기 부족에 붙어 살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그 명령에 따라야 하는데... 무조건 풀어준다고 원하는 효과를 볼 상황은 아닌 것이다. 자꾸 이런 식의 장면을 강요하면 억지 감동을 주는 꼴이 되는데, 그래도 역사드라마 마다 계속해서 이런 장면을 연출해내는 게 좀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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