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적 과장 └ 잡글

몇 번이고 반복해서 밝혔지만, 드라마가 역사를 충실하게 반영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드라마 보면서 역사 배우는 사람이 워낙 많은 세상이라, 그 차이점 지적해놓는 정도는 해두어서 나쁠 것 없을 듯하다.

먼저 15만-20만으로 헤아렸다는 후연 대군이 요동성 남문으로 몰려들었다가 전멸하는 장면. 드라마니까 신경 안썼겠지만, 10만이 넘는 병력이 어떤 규모인지 감을 못잡은 장면이다. 요동성 남문이 얼마나 넓었는지 몰라도, 여기에는 10만이 아니라 1만명만 몰려가도 사람이 들어갈 자리가 확보될 지 의심스럽다.

즉 여기에 15만명 끌고 들어가 죽이고 싶어도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황제를 비롯한 지휘부가 굳이 앞장서서 성안으로 들어가는 위험한 짓을 하는 나라도 있을 것 같지 않고. 극적 효과라는 것 때문에 드라마에서는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러니까 더 현실과 드라마를 구별해서 보는 능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후연 사신단이 들어오는 장면은 좀 더 억지스럽다. 사신단 대표가 태자였다면, 호위하는 무사가 있는 건 당연하다. 그렇지만 고구려 정도의 나라가 따라붙는 병력 하나 없이 완전무장한 부대 수준의 병력을 왕성 안으로 끌고 들어오도록 놔두었을 것 같지는 않다.

고구려 백성들과 후연 사절단이 충돌을 빚는 장면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원칙적으로 외국 사절단의 안전은 받는 나라에서 보장해야 한다. 그런 외교 사절단이 자기나라 백성들과 충돌 빚을 정도까지 방치했다면 외교의 개념도 없는 나라였거나 나라의 치안 수준이 의심되는 정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 사절단이 위협받는다고 남의 나라 왕성에서 그 나라 백성들에게 칼 들이대는 행동은 뭔지? 이런 상황에서 왕성의 치안과 외교사절을 맡아야 하는 고구려 관리들은 어디가고 백의종군하러 떠나야 할 왕자가 나서나? 그리고 하필 그 왕자가 사절단 무장해제까지 시켜야 하나?

어차피 한 나라의 왕을 만나러 가는 사절이 무장하고는 못 들어간다. 그런데 공식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을 왜 백의종군하러 떠나야 하는 왕자가 하겠느냐는 말이다. 아무리 주연배우 띄워주는 게 중요하다고 해도 나설 자리 못 나설 자리 가리지 않고 등장시키는 건 좋아보이지 않는다. 동아시아 국제정세에 중요한 역할을 하던 고구려와 후연의 지도층 인사들이 사소한 감정 싸움에나 치우치는 것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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